첩보원을 데리고 찍을 수 있는 영화는 많다. 007 시리즈처럼 첩보원을 완성시키는 수많은 첨단무기들을 등장시키거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관객까지 고난도의 두뇌싸움에 휘말려야 하는 이야기거나. 아니면 <겟 스마트>처럼 첩보원치고는 모자란 첩보원의 허허실실 소동극도 있다. <7급 공무원>은 이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첩보원 영화다. 첨단무기는 컴퓨터그래픽으로만 등장하고 머리보다는 몸으로 싸우며, 요원들은 나름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다. 대신 영화가 부각시키는 것은 첩보원이어도 결혼적령기인 나이와 늘어가는 목주름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인으로서의 애환이다. 연인과의 결정적 순간에 걸려온 출동전화는 “급한 게 중요하니? 중요한 게 급하니?”라며 짜증을 내게 만든다. 임무 때문에 연인을 적으로 간주해야만 하는 상황도 초래된다. 연인에게까지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사랑도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불가능한 작전’이다.
이미 헤어진 두 남녀가 첩보원이 되어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인 <7급 공무원>은 사실상 숨막히는 첩보극 대신 로맨틱코미디에 크게 기울어 있다. 직업적 세계와 연애사가 부딪치며 터지는 웃음의 공력은 꽤 큰 편이다. 특히 이들이 서로의 정체를 모를 때보다 오해하고 있을 때 웃음은 더 커진다. 서로를 서로의 적으로 파악한 이들이 연애적인 감정상 분노를 터트리다가도 직업적인 임무 때문에 애써 포옹하며 서로의 옷깃에 도청장치를 꽂는 장면이 그렇다. 이미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통해 능청연기의 일가를 이룬 김하늘과 드라마 <경성스캔들> <쾌도 홍길동>으로 ‘뺀질한’ 남자들을 그럴싸하게 연기한 강지환의 호흡도 웃음을 배가시키는 동력이다. 하지만 이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보다 임무에 충실해지는 건 아쉬운 점이다. 투닥거리는 사랑싸움보다 적과의 싸움이 많아지는 까닭에 액션은 있지만 액션 자체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비슷한 상황을 그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만큼의 액션을 보여줄 게 아니라면, 소소한 잔재미로 가득한 첩보원의 일상이 관객의 웃음을 터트리기에는 더 좋은 전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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