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웃지 못한다. 뛰지도 못한다. 웃고, 뛰었다간 쓰러진다. 쓰러져 잠이 든다. 치료약도 없는 불치병을 가졌다. 기면증 환자인 딸을 둔 엄마 또한 맘껏 웃지 못한다. 사고라도 날까봐 마음 졸이며 산다. 엄마는 딸의 든든한 그림자가 되고 싶지만, 그렇다고 힘껏 뛸 형편도 아니다. 남편은 죽었고, 생계는 그의 몫이다. 웃지 못하고, 뛰지 못하는 모녀는 그러나 울지 않는다. 기대려고 하지도 않는다. 딸은 자전거를 타고 혼자서 통학을 하려 들고, 엄마는 누군가의 차를 빌려 타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는다.
<바다쪽으로, 한뼘 더>의 엄마와 딸은 그렇게 닮았다. 두 사람은 아프지만, 아프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말하면, 아픔이 곱절이 된다는 걸 엄마와 딸은 안다. 아픔을 입 밖에 내지 않던 모녀는 어느 날 아프다고 조심스레 말하는 법을 배운다. 통각의 고백을 위한 적절한 대상을 찾았을 때, 딸 원우의 첫사랑과 엄마 연희의 로맨스 또한 시작된다. 준서는 내일이 두려운 원우에게 혼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일러주고, 선재는 어제를 떨치지 못하는 연희에게 담담하게 뒤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다.
첫사랑과 로맨스는, 그러나 단지 계기이거나 장치일 뿐이다. ‘비밀’과 ‘거짓말’로 숨기는 대신 아팠다고, 지금도 아프다고, 서로에게 털어놓는 순간 웃지 못하고 뛰지 못했던 모녀의 마법은 기적처럼 풀린다. 딸이 엄마의 ‘인형’을 박살내지 않았다면, 엄마가 딸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면, 모녀는 환각의 거울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내 새끼 아파서 우는 소리”를 듣고, 제 어미 아파서 우는 소리를 듣고, 그러고 나서야 엄마와 딸은 세상에 한뼘 더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기린과 아프리카>(2007)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뒤 <푸른 강은 흘러라>에 출연했던 김예리와 <우아한 세계>(2007)로 뒤늦게 영화의 맛을 깨달았던 박지영, 그리고 김영재(<사랑니> <모던보이>)와 홍종현(<쌍화점>) 등 주요 배우들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연기가 돋보이는 성장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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