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항상 죽음 이후를 찍는다. 혹은 어떤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의 이후 사정을 좇는다. 그의 영화는 애써 죽음, 상실 그 자체를 피하려는 인상도 준다. 고레에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건이 남긴 잔해와 파장이며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다. <걸어도 걸어도> 역시 죽음의 15년 뒤를 그린다.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요코야마 집안의 장남 준페이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준페이가 죽은 지 15년이 된 어느 여름날을 배경으로 한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15년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떻게 얽혀 있는지가 그들의 대사와 감정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서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란 존재 자체를 심각하게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항상 삶의 어딘가에 파묻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터져나오는 가족 사이의 오해와 불일치도 준페이의 죽음을 넘어선다. 가족이란 관계 자체가 담지한 본질적인 딜레마들이 새어나온다.
홈드라마 구조를 취한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모두, 은밀하게 품은 작품이다. 요코야마 가족과 요시오 사이의 관계는 옴진리교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를 상기시키고 죽음을 겪은 가족의 일상은 <환상의 빛>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3명의 아이들, 특히 요코야마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츠시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이런 요소들을 한 가족의 일상사로 부드럽게 묶는다. 일면 한 가족의 상처 치유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잔잔한 표면 아래 삶과 가족이란 관계에 대한 잔인한 통찰을 담는다. 한정된 실내에서 벌어지는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사는 매우 탄탄하게 짜여져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게 서로 부딪치고 모여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희망보다 아픔에 가깝다. 아픔을 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고레에다의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 어머니 역할의 기키 기린의 연기는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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