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대의 상징이 될 만한 인물들이 지금 이 영화 안에 서성거린다. 감독은 그때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대의 불행이 귀환함과 동시에 이 인물들도 그다지 구식으로 보이지 않고 지금 여기 와 있다. 다시 돌아온 경제적 난관의 되풀이 때문에 <물좀주소>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의 실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성실함과는 별개로 불행의 나락으로 빠졌고 영화에서는 구창식이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 그는 활기차다. 때로는 뻔뻔한데 귀엽다. 구창식이 처한 상황, 그러니까 자기가 채권추심원이면서 동시에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상황은 안쓰럽지만 그걸 보는 동안 웃음이 유도된다. 돈에 늘 쫓기는 자가 돈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직업이라니. 이 돈 받아내기의 인과를 통해 그의 동선과 관계가 정해진다. 영화는 주로 구창식과 싱글맘인 선주와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전개한다. 선주는 처음에 그냥 집 나온 철없는 소녀로 보였지만 홀로 힘들게 아이를 키우며 산다. 다른 이들도 있다. 사채업과는 영 안 어울려 보이는 심수교라는 곱상한 청년이 돈을 갚으라며 구창식을 찾아오고, 구창식은 그리 악해 보이지 않는 조 사장을 찾아가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물좀주소>는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만듦새가 미완임에도 어떤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는 건 좋다. 구창식이 사채업자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난 뒤 궁지에 몰리자 무턱대고 조 사장의 딸 결혼식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대목은 가슴 한쪽이 찡해진다. 전반적으로 볼 때 <물좀주소>가 중점적으로 표현하려 하는 것은 불행한 돈의 사슬 안에서 사는 인물들의 해학적 자기 극복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의의는 다 같은 그 사회적 피해자들을 여기 카메라 앞에 불러모은 다음 그들이 서로 뭉쳐 놀게 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심란한 그 위협을 떨치고 위협 자체를 해학적으로 극복해보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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