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대한민국이다... ★★★★
※ 결론을 포함해 중요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복잡한 듯 하면서도 단순하게 직선으로 내달린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성폭행 및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범인 검거를 촉구하게 되고, 엄청난 부담감을 안게 된 경찰 수뇌부는 진급을 미끼로 광역수사대 최철기(황정민) 반장에게 범인을 조작해서라도 사건을 해결할 것을 주문한다. 최철기는 자신의 스폰서인 건설회사 사장 장석구(유해진)를 이용, 가장 유력한 용의자 이동석(우돈기)을 배우로 세우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한편 자신의 스폰서인 김회장(조영진)을 조철기가 검거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주양 검사(류승범)는 검찰로 이첩된 이동석을 조사하다가 조철기가 범인을 조작했음을 알아차린다.
사실 조직 내에서 어떤 악역이라도 담당하며 성공을 위해 줄달음질치던 누군가가 성공을 목전에 둔, 또는 성공을 이룩한 직후에 몰락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이 자리에 경찰과 검사를 세운 후, 이들과 더러운 계약으로 맺어진 스폰서를 연결한다면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가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이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바로 2010년 대한민국의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당거래>를 보면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여러 사건들, 그러니깐 김길태 사건이라든가 검찰 성접대 사건 등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카메라의 움직임은 유려하게 인물들을 타고 흐르며, 음악은 리듬감으로 긴장감을 높여 보는 관객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부당거래>는 어떤 의미에선 <주먹이 운다>의 상극에 위치한 영화로 느껴진다. <주먹이 운다>에서 꼭 이겨야 하는 이유를 안고 있는 두 명의 대결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묘한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부당거래>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곤혹스러움이다. 그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출연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악한 존재들이다. 경찰, 검찰, 기자, 기업가 등 소위 우리 사회의 힘을 가진 자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행태는 재미로 보아 넘길 수만은 없는 살풍경이다. 바로 이런 자들에 의해 우리 사회의 법질서가 유지되고 있구나!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한마디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아프리카의 초원이다. 그곳은 24시간 항상 눈을 뜨고 누군가 자신의 뒷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사주경계를 해야 하는 곳이며, 남이 나를 치기 전에 내가 먼저 처야 하는 곳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좀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서 이들은 온갖 지저분한 거래와 협잡을 서슴지 않는다.
류승완 감독은 이들의 지저분한 거래와 협잡을 날 것의 냄새가 풍기는 대사(조작된 범인을 ‘배우’로 부르고, ‘자석이 붙었다’고 표현하는 등)와 장면(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의 대립, 병맥주를 생맥주 따르듯 하는 폭탄주 제조법 등)으로 현실감을 부여한다. 실제 현실인 것 같은 기시감이야말로 <부당거래>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인데, 거기엔 세밀한 사전 조사가 큰 힘이 된 듯하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경찰대와 비경찰대의 대립도 그러하거니와 현재 경찰 내에서 노조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영화에 비경찰대 출신의 한 대원이 화가 나서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사를 한 것은 아무래도 하위직 경찰들의 여론에 대한 스크린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부당거래>가 놀라워 보이는 건, 현실을 비판하거나 소위 지도층(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을 까발리는 영화들이 대체로 손쉬운 먹잇감인 국회의원(정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실제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을 주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부당거래>는 이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문화와 관행 등을 까발리고 거기에 야유를 보내며 조롱한다. 그리고 현실적 역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아무리 대들어 보아도 경찰력은 검찰력에 감히 미치지 못한다. 검찰의 모든 지위와 권력은 헌법의 기소독점주의에 의해 보장되며, 법적으로 분명히 경찰을 지휘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부분까지 건드리는 건 아니지만 이런 문제들이 영화 속에서 묘사되고 있다. 아무리 죄를 지은 게 확실해도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으며(태경 김회장), 따라서 검사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면 그뿐이다. 왜냐면 검사가 동료 검사를 기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검찰 성접대 파문과 관련한 특검 결과를 보면 여론이 요동친다고 해도 검사에게 거칠 것은 없어 보인다. 반대로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먼지털이식 수사로 누군가를 고생시키거나 굴복시킬 수도 있다. 이건 정의감의 발로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적 원한이거나 정치적 보복에 불과하다. 오죽 했으면 전직 대통령조차 자서전에서 한국에서 최고의 악한 세력이 검찰이며, 이들을 개혁하지 않고선 제대로 된 대한민국을 세울 수 없다고 경고했을까. 이런 점에서 영화의 결론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 무엇보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등 주연급만이 아니라 조연급 및 단연들조차 나무랄 데 없는 연기로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 ‘배우’가 알고 보니 ‘배우’가 아니라 실제였다는 것은 이들의 온갖 거래와 협잡이 사실상 뻘짓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들이 벌이는 뻘짓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 대단히 진지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류승완 감독하면 액션임에도 이번 영화에선 액션이 자제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워낙 강한 이야기라 그런지 강도 높은 액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최철기가 장석구를 만나자 마자 두들겨 패는 장면은 ‘역시 류승완’이라는 찬사를 받을만하다.
※ 류해진, 류승범과 정만식(공 수사관), 그리고 송새벽(철기 매제) 등에 의해 유발되는 유머는 밀폐된 공간에 문을 열어주듯 적당히 숨통을 틔어준다. 물론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미디는 이 영화를 청소년 관람불가로 등급 판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 일종의 카메오를 발견하는 것도 한 기쁨이었다. 이춘연 대표는 유명한 분은 아니라 별 반응이 없었는데, 이준익 감독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객석 여기저기서 ‘맞나?’하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익 감독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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