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은 너무 많아> <나의 노래는>을 만든 안슬기 감독은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 문어대가리의 외계인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도 일상으로 느껴질까?”라는 질문에서 이 영화를 출발했다고 한다. 그의 이 말을 해석하자면 감독은 홍상수의 영화가 일상의 세밀화이며 그 세밀한 일상에 문어대가리 외계인이라는 공상의 설정이 들어올 때 낯선 것과 낯익은 것 사이에 틈이 열리고 그 틈이 무한히 확장된 우주로 닿는 실마리가 될 거라고 예측한 것 같다. 일단 흥미로운 설정이다. 지구인의 습성에 낯설어하며 벌이는 외계인 연우의 행동에서 몇 가지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일화들도 발견된다. 그는 왜 지구인들은 뒤에서 안아주는 걸 좋아하는지 궁금해하고, 설거지를 하는 아내의 뒤에서 바지를 벗기면 좋아할 거라는 말을 믿고 우스꽝스럽게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외계인’이라는 이 설정은 이 영화의 성취도에 어느 만큼 기여했을까. 외계인은 왜 이 지구에 살고 있을까, 라고 묻고 싶어질 때 영화는 후반부에 숨겨둔 비밀의 봉함을 열지만, 그건 너무 거대한 테마여서 다소 힘이 빠지며 동시에 영화적으로는 다소 서사의존적이다. 물론 <지구에서 사는 법>에 배인 어떤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그것에의 극복을 위한 인물들의 몸짓은 어떤 사전 정보 없이 불현듯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마주칠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의 여유를 줄 것 같다. 그게 감독이 겨냥했던 동기가 온전히 실현된 것에서 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세밀한 일상에의 놀라운 전복은 설정이 아니라 감각의 차원에서 열리는데, <지구에서 사는 법>은 감각의 문을 열지 않고 설정의 뜰을 오래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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