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세상 근심을 잊고,오토바이와 휴대폰을 선망하고, 교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며 자유연애를 상상하는 아이들이 옌볜에도 산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 그들은 ‘랑만’을 꿈꿀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푸른 강’이란 제목의 채팅방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는 “바다를 최고 이상으로 삼는” 강처럼 흘러 흘러가자고 다짐한다. “혼탁했던 내 영혼에 저주를 퍼붓는다”거나 “우리는 온대지에 흐르는 푸른 강이다” 등의 문어체적인 말들이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포함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푸른 강은 흘러라>는 아직 순수와 낭만, 푸름이란 단어를 소중히 여기는 옌볜 아이들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다.
영화의 원작은 조선족 작가인 량춘식과 김남편의 소설이다.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이 옌볜의 소설을 가지고 옌볜에서 옌볜의 언어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언뜻 <푸른 강은 흘러라>는 옌볜 아이들의 군상을 그린 영화로만 볼 수 있다. 연출을 맡은 강미자 감독은 급변하는 시대에 놓인 이들이 ‘공화국’의 가치와 자본주의의 흐름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그들의 지역적·언어적 색채로 그려냈다. 감독과 배우들에게, 지금의 한국 관객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그런 낯섦이 오히려 한국 관객을 향한 <푸른 강은 흘러라>의 화법이다. 강처럼 푸르게 살자는 계몽적 메시지는 연인의 낭만적 대화로 치환됐고, 옌볜의 아이들은 역으로 한국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극중에서 병치된 철이 엄마의 한국 생활은 가장 직접적인 말 걸기다. 그녀는 “비좁고 옹졸한 강” 대신 바다를 꿈꾸며 한국을 찾지만, 단속원에게 쫓기며 고된 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는다. 어쩌면 지금의 남한이 더 비좁고 옹졸한 세계가 아닐까? <푸른 강은 흘러라>는 더 넓은 세계를 꿈꿔야 하는 건 자신들의 방법으로 방황을 이겨낸 철이와 숙이가 아니라 남한의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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