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이 미끼없이 잡는 100마리의 고등어와 비맞아가며 고뇌하며 집중하며 잡아올린 주의 고등어 한마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당신이 잡은 100마리의 고등어는 그 가치를 모른채 잡아오린 즉 일상에서 너무도 흔히 보고 넘어갈 수 있는 고등어일뿐... 그러나 주가 잡아올린 고등어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하는 고등어에서 그 상을 깨고 잡아올린 고등어입니다. 그걸 어찌 동일시 시키는지요.
다시 언급해드리죠... 감독이 그리고 영화만든 사람들이 "고등어"잡이를 몰라서 그렇게 그린 것이아닙니다. 그 부두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은 "주"나 "추풍낙엽"만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서 낚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주"가 낚은 고등어를 낚지 못할까요? 어쩌면 이미 그 고등어를 낚았어도 그 진정한 가치를 모를수도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그토록 많이 잡아올린 고등어는 생선 고등어로써의 가치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가 고생해서 건져올린 고등어는 생선으로써의 고등어가 아니죠. 아시겠습니까!!!
한가지 묻겠습니다... 수행이라는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속세를 떠나서 하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주"는 그곳 바다로 표현된 공간에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잡힐듯 잡히지 않는... 깨달음? 깨닫지 못한 자는 그 깨달음은 뭔가 신비롭고 위대하고 멀리 있다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정작 그런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낚아 올린 100여마리의 고등어에도 있는 것이고 지금 당신의 주변에도 있는 것입니다... 단지 차이는 그것을 발견하느냐 마느냐입니다... 고등어를 고등어의 형상으로만 바라본다라면 참형상을 볼수 없죠... 왜 영화에서 금강경의 구절이 나왔는지는 주의 고등어 낚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그저 이곳저곳에서 수집해서 각각의 장면에 한번씩 써먹고 끝을 맺는 것이 아니죠...
당신은 눈에 보이는 고등어 100마리를 잡았습니다... 그저 생선일 뿐이죠... 즉 눈에 보이는 상만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주는 비록 한마리일지언정 눈에 보이는 고등어의 상이 아닌 그것을 깬 또다른 상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채 당신의 잡았다는 그리고 미끼없이도 잘도 낚았다는 100마리의 고등어와 주가 잡은 고등어를 같이 평가하시는지요... 당신은 생선을 잡았지만 주는 생선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금이 100톤가량 있으면 뭐합니까... 그 가치를 모르는데...
다시 반복하지만 당신은 고등어를 100마리 잡았지만 주는 생선으로써의 고등어를 잡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고등어의 습성을 모른채 말도 안되는 오버를 해서 잡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에 그저 웃음만 나옵니다... 고등어가 사용된 의미를 모른채 그저 고등어의 눈에 보이는 상에 매달린 당신을 보니 참 딱하기까지 합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