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악당이 무고한 아이를 감금하고 살해한다. 경찰에 붙잡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에도 그를 감옥으로 내몰 길이 없다. 이토록 성긴 법의 그물코에도 이 사회는 정녕 정의로운가? 야가미 라이토(후지와라 다쓰야)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일본 경찰청 경시관 지망생이자 열혈 정의파인 라이토에게 세상은 악으로 물든 비정한 곳이다. 자괴감에 육법전서를 내던지자 이를 대신이라도 하듯 데스노트가 찾아든다.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 노트의 위력을 깨달은 라이토는 단죄받지 않은 범죄자의 사형을 위해 스스로 정의의 사도를 칭하고 나선다.
공부는 물론 운동신경 역시 발군인 라이토의 반대축에 류이치(마쓰야마 겐이치)가 있다. 정체 불명의 그는 마시멜로와 빵을 꼬치에 꿰어 먹는 요상한 인물이지만 실은 미해결 범죄를 수차례나 해결한 명탐정이다. 멈출 줄 모르던 라이토의 살인 행각은 류이치의 등장으로 고비를 맞는다. 짙은 색 옷과 흰 티셔츠처럼 대조적인 두 인물은, 그러나 치밀한 사고력의 소유자라는 점, 패배를 싫어한다는 점, 무엇보다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플갱어처럼 닮았다. 라이토가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노트의 효과를 실험하거나 류이치가 사형수의 죽음을 방조할 때 범인과 탐정 혹은 선악의 경계는 점차 흐려진다.
<데스노트>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라이토와 류이치의 치열한 두뇌 싸움과 그로 인한 쾌감이다. 죽음을 죄의식없이 구현하는 <데스노트>의 세계는 원작인 오바타 다케시의 동명 히트만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이외에도 원작의 매력을 잘 살려낸 요소로 CG 처리로 되살려낸 데스노트의 전 소유자인 사신(死神) 류크를 꼽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날렵하게 하강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류크는 사과를 즐기는 습성이나 장난꾸러기 기질, 메탈그룹 멤버를 연상케 하는 복장 등이 버무려진 매력적인 존재다(실사영화임을 염두에 둔다면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척점에 선 두 주인공은 낯익은 배우들이 맡았다. 후지와라 다쓰야는 <배틀 로얄>에서 목숨보다 우정을 우위에 두던 선한 얼굴의 나나하라 슈야를, 마쓰야마 겐이치는 <린다 린다 린다>에서 한국 유학생 송(배두나)에게 한국말로 고백하던 수줍은 남학생을 연기했다. 록그룹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헌사했다는 주제곡 <대니 캘리포니아>(Dani California)가 반가운 깜짝선물이지만 두 배우의 카리스마 대결은 너무 큰 포장지처럼 헐거운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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