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3각 게임에선 ‘언제나 함께’여야 한다. 사람은 둘인데, 발은 셋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묶은 발을 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둘 다 고꾸라지게 돼 있다. 누군가 앞설 때 또 다른 누군가도 앞서야 한다. 누군가 지칠 때 누군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2인3각 게임의 진짜 재미는 두 사람의 의지와 행동이 뒤엉키는 상황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버디무비를 보는 쾌감도 다르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뭔가를 해결해야 하고, 한시라도 빨리 어딘가에 당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두 인물은 싸우고 또 싸운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다 보면 두 인물은 엔딩 라인에 닿아 있다. 경찰과 조폭이 인질과 인질범으로 만나 벌이는 요상한 추격전 <강적>은 어떨까.
먼저 인질범 수현(천정명)의 신상명세. 과거 조폭이었던 수현은 맘먹고 새 삶을 차린 젊은이다. 여전히 그의 손목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지만, 그가 들고 있는 칼은 이제 야채를 다듬는 데 쓰인다. 여자친구 미래(유인영)와 함께 라면가게를 운영하는 수현에게 어느 날 재필(최창학)이 연락해온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형제처럼 함께 자란 두 사람은 함께 조직 생활을 했었다. 재필은 수현에게 사채 놀리는 건달 김중만에게 위협을 가해달라고 부탁하고, 수현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부탁을 받아들인다. 김중만의 옆구리에 칼을 먹이는 데 성공하지만, 습격당한 일당들에게 뒤쫓기는 수현. 결국 도주 끝에 음주단속 나온 교통경찰에게 “사람을 찔렀다”며 자수한다. 이번엔 인질 성우(박중훈)의 신상명세. 강력계 형사인 성우는 별볼일 없는 개차반이다. 아내는 집나간 지 오래고, 하나 있는 아들은 장기기증자를 기다리며 병상에 누워 있다. 아들의 병간호까지 해야 하는 성우에게 사건 해결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잠복 중에도 그는 나이트클럽 약쟁이들의 뒷덜미를 붙잡고 삥을 뜯는다. 강도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찾았던 성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딴짓을 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그 사이 파트너 최 형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와 싸우다 결국 죽게 된다. 근무지 이탈로 질책을 받게 된 성우. 동료들은 파트너를 버린 성우에게 질책을 쏟아붓지만, 아들의 장기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정신팔린 성우는 큰돈 마련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어쩌다 두 사람은 인질과 인질범으로 묶였을까. 쥐와 고양이가 한데 묶인 사연은 좀 복잡하다. 수현은 제발로 경찰서로 향하지만, 또 다른 살인사건을 저지른 용의자로 점찍힌다. 감옥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음을 판단한 수현은 계획 자해로 경찰병원에 호송되고, 이곳에서 어렵사리 탈출을 결행한다.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성우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현과 맞닥뜨리고, 수현은 경찰들을 따돌리기 위해 성우를 인질로 삼는다. 형사와 조폭이 2인3각 경기를 벌이는 건 그닥 중요한 설정이 아니다. 세상은 어차피 시궁창이라고 믿는 성우가 경찰 배지 내밀고 탈옥수를 체포할 리 있겠는가.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빠져나가려고 기를 쓰는 수현이 믿을 수 없는 짭새와 동행할 리도 없다.
<강적>이 마련한 재미는 다른 데 있다. 지나치게 긴 오프닝의 거친 액션도 아니고, 인질과 인질범이 도심에서 벌이는 대규모 카체이스는 더더욱 아니다. 데뷔작 <정글쥬스>에서 마약봉지를 둘러싼 양아치와 조폭과 경찰의 추격전을 선보였던 조민호 감독은 좀더 흥미로운 설정을 마련한다. 가까스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느라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 총을 든 자는 바뀌었지만, 성우는 자신을 놓아준 수현을 붙잡는다. 순직 수당만이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성우는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수현을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어떻게든 죄를 벗어야 하는 수현으로서 또 한겹의 올가미를 뒤집어쓸 수 없고, 목숨을 내놓을 수도 없다. 수현과 성우의 거래는 그렇게 이뤄진다. 수현은 성우에게 수술비를 마련해주기로 하고, 성우는 수현의 결백을 증명해주기로 하고. 그러나 이들의 거래가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영화가 내버려둘까. 두 사람이 꾸민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불발로 끝나고, 설상가상 두 사람은 계속해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강적>은 꽤나 공들인 시나리오다. 수현과 성우의 심리와 동선에는 제각각 합당한 이유가 있다. “세상 살다보면 뭔가 있다”고 말하는 수현과 “세상 살아봤자 별것없다”는 상우는 도주하면서 서로를 닮아가고, 그 과정을 영화는 충실하게 뒤따른다. 박중훈과 천정명, 두 배우의 연기가 전반부엔 아슬아슬하다가도 뒤로 가면서 접착력을 과시하는 건 비교적 탄탄한 내러티브 때문일 것이다.
<정글쥬스>에서도 그러했듯이, <강적>에서도 조민호 감독은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을 삽입한다. 단, 전작에서의 생뚱맞은 유머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했다면, 이번엔 때로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장치 역할도 한다. “사람은 동물 아니냐”며 피칠갑을 한 두 사람이 수의사에게 치료를 호소하는 장면이나 좀 빈번하긴 하지만 여형사의 우스꽝스러운 미행장면 등이 그렇다. 장르영화로서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두 사람이 함께 내달리기로 한 뒤부터서는 인물들간의 관계가 좀 헐겁다. “내가 모두 죽였다”고 말하는 수현의 자포자기나 “정말 니가 죽였냐”고 묻는 성우의 의문을 제대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싱겁게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 좀더 방점을 찍었더라면 어땠을까. 제자리를 찾지 못한 수현과 미래의 뒤늦은 애정장면에 공을 들이는 것 대신 말이다.
사족으로, <강적>이 수없이 쏟아져나온 남성영화의 진부한 궤적을 이탈했을 것이라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극중 수현과 상우가 동상이몽에서 이심전심으로 발전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전반부에서 영화는 두 사람의 욕망을 일찌감치 일러준다. 수현은 좋은 남편이 되고 싶고, 상우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혈육 같던 친구 재필과 파트너 최 형사를 잃고서 한몸이 된 두 사람의 목적은 나쁜 아버지를 찾아내 응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성장영화로 봐달라”는 조민호 감독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장의 방정식을 풀어내는 해법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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