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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jangill 2010-10-05 오후 4:52:10 638   [0]

활은 줄의 탄력으로 쏘는 무기다. 줄이 팽팽하지 않으면 화살은 날아가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첫머리에 활처럼 팽팽하게 살고 싶다고 쓴다. 영화는 팽팽하게 살고(활: 活) 싶은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잘못 읽으면 앳된 소녀를 사랑하는 노인의 엇나간 도착적 사랑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정욕은 인같이 우리 몸에 따라붙는 게 아닌가” 하는 노인 역 전성환의 소회는 영화를 이해하는 좋은 실마리가 된다. 나이가 들어도 떨쳐지지 않는 정욕이 인생이라는 현을 팽팽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활(活)은 사전에 따르면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물결이 합치고 하여 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김기덕 감독은 물과 물이 부딪치는 애증의 관계가 삶을 만든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표피적인 독해일지 모른다. 활은 화살을 메워서 쏘는 무기란 뜻과 더불어 현악기의 현을 켜는 기구란 뜻이 있다. 두 번째 활의 뜻은 팽팽한 현을 마찰시키고 어루만져 소리를 얻는 도구를 말한다. 여기에 김기덕 감독의 데리다식 독해가 있다. 플라톤이 쓴 파마콘(pharmakon)이라는 그리스어에 치료제와 독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어, 어떤 특정한 의미를 확정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작품 <활>도 한 가지 시선으로만 보기 어려운 두터운 이야기 층을 지니고 있다. 활은 무기인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악기인가. 그리고 고립된 배 위에서만 사는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는 환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노인(전성환)은 서해 앞바다에 두척의 배를 끌고 생계를 잇고 있다. 한척은 바다 낚시꾼에게 빌려주는 낚시터이며, 또 한척은 뭍을 오가며 낚시꾼도 싣고 먹을 것도 실어오는 배다. 노인은 10여년 전 길가에서 데려온 집 잃은 소녀(한여름)를 키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노인은 소녀가 자라면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듯하다. 관객은 전후 사정을 알 수 없고 낚시꾼들의 객쩍은 소리에서 진위를 가려내야 한다. 낚시꾼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는 소녀에게 힐끗힐끗 한눈을 팔지만 그때마다 노인의 무시무시한 질투의 눈초리를 받아야 한다. 노인은 낚시꾼들의 탐욕이 뱀 혓바닥처럼 날름거릴 때마다 화살을 날려보내 노여움을 터뜨린다. 실제로 그것은 화살일까 아니면 남자(아버지)들이 자기 연인(딸)을 바라보는 세상의 음험한 관음증을 향해 드러내는 분노의 상징일까.

소녀를 품겠다는 노인의 욕망보다 낚시꾼의 욕망에 대해 관객은 더 엄격해지게 마련인데, 그 까닭은 노인의 사랑법에 제법 기품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소녀와의 혼삿날을 잡아놓고 어서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함께 방은 쓰지만, 노인은 이층 침대 위에서 결코 아래층인 소녀의 침대로 내려오지 않는다. 노인의 사랑은 소년의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순수하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노인은 소녀와 혼례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위에 뜬 낚시터는 노인의 사설 왕국이다. 여기는 법의 통치 구역이 아니며, 세상의 질서조차 간섭하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뭍으로 오가는 작은 배가 뭍의 먼지며 풍습까지 묻혀오면서 노인의 꿈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소녀는 노인의 세계보다 더 넓은 곳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세상에 대해 동경을 품는다. 동경이 커질수록 노인에 대한 사랑은 작아진다.

활은 노인이 세상을 향해 쏘는 무기이자,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무기이다. 노인은 아마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그가 세상으로부터 유일하게 얻어낸 가치일 것이다. 노인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이제 소녀로부터 받게 될 상처를 달래기 위해 활을 켠다. 무기가 악기가 되는 순간이다. 거꾸로, 소녀도 완고한 노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세상을 향한 동경이 가로막힐 때 활을 켠다. 노인은 소녀를 바다에 가두고 싶고, 소녀는 바다와 노인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이 엇갈린 선율이 단순한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때부터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겹쳐서 읽힌다. 아버지의 어깨 너머 더 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 소녀가 아버지 바깥으로 나아가고 싶은 이야기이며, 그런 딸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피흘리며(초경) 아이의 경계를 월경해 어른으로 가는 딸의 통과의례이자, 딸을 세상에 어떻게 내보낼 것인가에 대한 부모의 이야기가 매듭처럼 잘 꼬여 있다. 기이한 ‘로리타’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근심을 함께 곁들인 ‘데미안’의 또 다른 판본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마리아>의 근심을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간 버전일까. 그러나 여기엔 소녀를 그저 떠나보낼 수만 없은 노인의 정념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너무 뿌리가 깊고(그러나 바다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곳이다) 또한 연약하여 언제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울수록 재가 되기 쉬운 그 격정과 온몸을 내던지는 정직성이 이 정념을 인정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부정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그 불가해한 사랑을 우리는 응시하게 된다. 그것이 줄곧 팽팽하게 활의 양끝을 잡아당기고 있는 현의 장력이자, 인생을 끌고 나가는 힘이 아닐까.

바다는 이 유사부녀의 드라마를 고요히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유일한 목격자다. <악어>부터 줄곧 김기덕의 화면에 넘실거리던 물의 이미지는 <활>에서 드디어 범람한다. 뭍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바다 한가운데 뜬 배 위에서 보이는 건 온통 푸른 물과 바다다. 그러나 그 물의 이미지는 차갑거나 무서운 공포의 이미지가 아니라 고요하고 깊은 생명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물은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양수가 아닐까. 촬영했을 때는 사납고 추운 파도가 불어닥쳤을 1월의 바다가, 그래서 따뜻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대사는 <빈 집>만큼이나 없지만 노인과 소녀가 주고받는 손과 눈의 언어는 풍요롭다(낚시꾼들이 입을 열어 내뱉는 대사는 빈곤하며 누추하다. 이 작품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목소리가 하나 더 있지만 그것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므로 생략한다).

<빈 집>은 과연 김기덕이 더 나아갈 지점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남겼다. 그러나 김기덕은 한발 더 나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컴컴한 심연에 닻을 내리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으나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을 채굴한다.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는 이미지로 치환하는 그의 상상력은 아직 정점을 향해 힘차게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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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2005, The Bow)
제작사 : 김기덕 필름 / 배급사 : 김기덕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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