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와 설정만 놓고 보면, 한국영화의 시대극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갑옷 두르고 수염 기른 근엄한 장군들의 입에서 사투리와 욕지기가 터져나오고(<황산벌>), 정숙과 순결의 규방에서 불그스름한 욕정의 게임들이 버젓이 벌어지고(<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급기야 <천군>에선 성웅 이순신마저 물욕에 사로잡힌 방탕한 사내로 그려진다. “현대의 남북한 군인들이 40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이순신 장군 만들기에 동참한다”는 줄거리의 <천군>은 시치미 뚝 떼고 엉뚱한 상상력을 피워 올린 한국판 <백 투 더 퓨처>다.
북한장교 강민길(김승우)은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한 핵무기 비격진천뢰가 미국쪽에 양도되자 불만을 품고 비격진천뢰를 탈취한다. 남한 핵물리학자 김수연을 인질로 삼고 도주한 강민길을 잡기 위해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가 투입된다. 마침 433년 만에 한반도 상공에 거대한 혜성이 지나고, 압록강 유역에서 대치하던 이들은 갑작스런 돌풍과 함께 1572년 여진족의 침략이 계속되던 조선에 떨어진다. 동굴에서 첫날을 보내던 이들은 최신식 화기를 도둑맞게 되고, 얼마 뒤 이를 훔쳐간 자가 젊은 날의 이순신(박중훈)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당황한다.
“왜적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스물여섯 번째 권에 기록되어 있는 이 묘사는 400여년이 지나 <천군>의 모티브를 발전시킨 계기. 임진왜란 당시 하늘이 내린 병사라면, 분명 천자(天子)가 보낸 명군(明軍)일 것이라는 게 훗날의 역사적 해석이지만 민준기 감독은 이를 “남북한 군인들이 과거로 거슬러올라 젊은 시절의 이순신을 만난다”는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바꿔쳤다.
<천군>의 이순신은 위엄과 기개를 지닌 청년이 아니라 국경을 넘나들며 인삼을 밀매하는 장사치다. 장인의 후원으로 7년을 준비했던 무과시험을 보게 되지만 낙방하자 금의환향 대신 변방 마을을 떠돌며 도둑질과 사기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순신은 예기치 않은 후손들과의 만남으로 예지와 용기를 갖춰가게 된다. 반면, “니네는 적도 아니면서 왜 만날 이렇게 싸우나?”라는 이순신의 일침은 남북한 병사들에게 뼈아픈 충고로 받아들여진다고. 몽골, 중국 등을 돌며 7개월 동안 촬영한 <천군> 제작진은 “명랑해전을 육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여진족과의 대규모 전투장면을 볼거리로 내세운다. CG 공정이 늦어져 제작진은 사전 시사회를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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