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 종려나무는 기다림의 상징이었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환영하던 군중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이 종려나무 가지라고 했다. 폭풍우로 배가 표류하게 되자 며칠을 머무르면서 봉애(조은숙)와 정순(김유미) 모녀의 도움을 받았던 최 선장(이경영)이 하룻밤을 보낸 정순에게 꼭 돌아오마며 두손에 쥐어준 것도 작은 종려나무 한 그루다. 종려나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수난의 시작을 알리는 고통의 나무이기도 했다. 정순이 받아든 종려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룰 때까지,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최 선장은 정순에게 고통이고 괴로움이다.
그 하룻밤으로 태어난 딸 화연(김유미)은 언젠가는 종려나무 숲을 없애버리겠다며, 한마디 약속에 평생을 기다림으로 보낸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변호사로 거제도 조선소에 오게 된 인서(김민종)가 자신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약속할 때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종려나무숲에 얽힌 봉애와 정순의 사연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인서와 화연의 과거를 ‘2년 전 화연에게서 도망치듯 떠났다’는 인서의 회고로 시작한다. 겹쳐진 두개의 액자 이야기를 하나로 꿰는 것은 대학 특강차 강릉으로 향하는 인서와 전날 맞선으로 만났던 인서에게 매력을 느껴 무작정 따라온 성주(이아현)의 대화다.
세 이야기를 한 영화에 담아내기엔 무리였을까. 정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봉애와 정순의 사연에 비해 영화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인서와 화연의 이야기는 감정의 흐름이 둔탁하다. 인물에 대한 묘사를 배제하고 에피소드들로 단순화한 둘의 사랑에 감정이입을 하기란 쉽지 않다. 에피소드간의 어색한 이음새도 인물들의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여기에는 인서가 화자가 되어 회고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액자식 구성이 좀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래도 <종려나무숲>에 끌린다면 그건 누군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지닌 담백함의 미덕 때문일 것이다. 1인2역을 맡은 김유미나 할머니 역까지 해낸 조은숙의 연기가 그 잔잔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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