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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현생과 전생이 공존하는 그곳... 엉클 분미
ldk209 2010-09-29 오전 11:42:13 838   [1]
산 자와 죽은 자... 현생과 전생이 공존하는 그곳... ★★★☆

 

발음하기도 힘든 (하긴 태국 사람들의 이름은 대체로 그렇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명성(?)을 들은 건 대략 1~2년 전이었다. 특히 평론가들의 100%에 가까운 찬사는 기회가 되면 꼭 보리라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그의 작품 중 처음으로 2010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엉클 분미>의 국내 개봉이 확정될 즈음, 한 후배의 얘기는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작품에 접근하는 건 두려운 경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엉클 분미> 이전의 다른 작품을 어렵게 구해 본 그 후배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도 내가 영화 일을 한 게 몇 년인데, 그 사람 영화를 보곤 이해는커녕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전통적 내러티브 구조를 파괴한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기존의 그런 영화에 대한 후배의 관점을 고려해 볼 때,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작품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영화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어쨌거나 유일하게 <엉클 분미>를 상영하고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약간은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엉클 분미>를 감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분명 <엉클 분미>가 묘사하는 상상력이나 문법이 나름 놀랍고 신기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엉클 분미>는 관람이나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신비로운 현상을 체험하는 차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또한 기존 작품을 안 봐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엉클 분미>는 나름 스토리가 있는(!) 친절한 영화에 가깝다. 물론 영화가 끝날 때, 대부분의 관객 표정은 아스트랄했지만 말이다.

 

줄거리를 보자. 극심한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분미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전생을 또렷이 떠올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내의 유령과 오래 전 사라졌던 아들이 원숭이 신이 되어 집에 돌아오고, 분미는 자신을 돌보아주던 통과 젠, 그리고 아내의 유령과 함께 자신의 생이 시작했던 신비로운 동굴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영혼은 장소에 깃들지 않고 사람이나 생명에 깃든다” 분미가 아내 유령에게 사람이 죽은 후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세계, 현생과 전생이 혼합되어 있는 세계, <엉클 분미>라는 영화가 주는 가장 뚜렷한 질감이 이 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산 자들의 식사 자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해 같이 식사를 하고 남편을 돌보는 유령의 질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다르지 않음을, 같이 공존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원숭이 신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는 분미의 모습은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감독, 아니 태국인들의 자연관, 생명관, 철학을 보여준다. 태국인이라고 단정 지은 건 분미를 돌보는 외국인만이 유령과 원숭이를 보며 놀라기 때문이다.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판타지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유령이나 원숭이 신의 등장도 그렇지만, 박색 공주와 메기와의 성교는 그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고, 분미가 전생을 시작했고, 현생을 마무리하는 동굴의 분위기는 실로 신비스럽다. 의미가 여전히 모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육체가 분리되어 두 개의 시간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비범한 듯 느껴진다. 어디선가 읽었듯이 진정 놀라운 건 이러한 세계관을 태국 사람들은 대체로 체화되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장면들이 태국사람들에게는 그저 현실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엉클 분미>는 태국의 역사와 현 정세에 관한 날카로운 시각을 담고 있다. 분미는 질환으로 고생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오래 전 공산주의자를 죽인 데 대한 업보”라고 말한다. 태국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이념을 이유로 얼마나 많은 태국 사람들이 죽어 갔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우리의 경우와 비슷하리라. 그리고는 동굴에서 군인들이 등장하는 환영을 본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야식을 먹으러 나가는 통과 젠의 또 다른 육신은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며, 화면엔 태국 시민들의 시위와 이를 진압하는 군인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보다 근본적으로 영화가 말하고 있는 죽은 자에 대한 표현들, 환생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최근 태국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판일 것이다.

 

※ 우연히 어디선가 보았던 아래와 같은 말이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 듯 싶다. “<인셉션>은 아무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영화. <엉클 분미>는 아무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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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분미(2010,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배급사 : (주)영화사 백두대간
수입사 : (주)영화사 백두대간 / 공식홈페이지 : http://www.cin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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