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화장실에 앉아 임신 테스트기를 들여다보는 제니의 얼굴로 시작된다. 테스트기의 빨간 두줄을 바라보는 제니의 표정으로 클로즈업. 그런데 이 소녀는 꽤 담담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거나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15살 소녀의 이 의연한 표정이 바로 영화의 전체적 흐름 혹은 분위기를 전달해준다. <제니, 주노>는 연애, 임신, 출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절박한’ 이야기를 십대의 철없음으로 매우 유연하게 풀어가는 영화다. 그 험난한 주제는 잔혹하고 생생한 현실극보다는 어드벤처 판타지 모험극 속에서 ‘기특하고 올바른’ 두 청소년을 낳았다. 그러나 이 기특한 소녀와 소년은 왠지 진부하다. 어른을 흉내내는 이들은 흠잡을 데 없으나 앵무새 같다. 성인 세계의 클리셰를 완벽히 흡수하여, 심지어 거기에 책임감까지 더해 난관을 극복하는 뽀얀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어린 신부> 이후 쏟아지는 ‘무늬만’ 청소년물과 닮았다.
제니는 전교 5등 안에 드는 모범생이고 주노는 잘생긴 프로 게이머이다. 이 잘나가는 커플들은 둘의 매력에 이끌려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제니와 주노는 약간의 갈등을 거쳐 아이 수호 작전에 나서기로 한다. 주노는 여느 남편들처럼 제니를 위해 밤낮을 불문하고 달려가 음식을 대령하고 제니는 뱃속에서 아기가 자란다는 이유 하나로 큰소리친다. 이들은 아기 때문에 다투거나 고민하는 대신 생명의 소중함을 읊어대며 오히려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아기를 어떻게 낳을지, 누가 키울지, 부모를 설득할 수 있을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것인지와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들은 배제되고 그 자리에는 제니와 주노의 달콤한 연애담만 남는다. 이들은 모든 현실적 고민을 유보한 채 지긋지긋한 일상을 핑크빛으로 칠한다.
이쯤 되어 분명해지는 건, 단 하나, 제니와 주노는 ‘잘사는 집’ 자제들이라는 사실이다. 약간의 비약을 덧붙여, 이들이 뱃속의 아기에 대해 무식하게 용감해질 수 있는 건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의 문제가 경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에 허덕이는 어른들보다 이들이 기특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어린 신부> 때와 같이 소녀, 소년들의 판타지를 공략할 뿐이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판타지 속에는 애 낳고 키우는 더욱 믿기 힘든 환상이 추가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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