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으로 장편 개봉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점쳤던 이성강 감독의 첫 번째 장편실사영화. <살결>은 그러한 호명에 대해 절반의 긍정과 절반의 부정으로 대답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나는 광경을 목격한 민우(김윤태)는 옛사랑 재희(김주령)와 우연히 재회한다. 아홉번의 섹스를 제안한 재희와 민우가 육체적 관계를 더해감에 따라 옛 감정 또한 되살아난다. 한편 새로 자취방을 구한 민우는 그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소녀의 영혼을 느끼고, 그 소녀는 민우 이전에 그 방에 살면서 옷을 만들었던 종이(최보영)였음이 밝혀진다. 종이 역시 그 방에서 특별한 사랑을 키웠고, 민우는 재희와 섹스하면서 종이를 느낀다.
한때 포르노로 오해받았을 만큼 많은 ‘살결’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시키던 이성강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혼과 교감하며 마음과 육체의 살결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살결>은 또한 성인판 동화이기도 하다. 간신히 숨을 내쉬는 존재, 섬세한 촉수를 가진 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존재는 동심을 간직한 사람에게만 자신을 드러내게 마련. 결국 이성강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실사영화를 완성한 셈이다. 무엇으로부터도 위안을 얻지 못하고 늪에 빠져드는 남자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 소녀 등 모든 등장인물이 품고 있는 황량한 내면의 풍경이 때로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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