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토크>는 <여자, 정혜>로 가능성을 보여준 이윤기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첫 장편영화 <여자, 정혜>에서 주목의 요점이 된 이윤기의 그 가능성이란 주인공 심정의 솜털까지도 만지는 듯한 세심한 관찰도와 정확한 재현력이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영화에 와서 보니 그 관찰과 재현의 관심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가 좀더 분명해졌다. 감독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두 번째 영화인 지금까지 그의 영화적 관심은 오로지 정박의 삶을 사는 사람들로부터 기인한다. 더러는 그 정박의 삶에 바탕하고 나서야 이야기이자 주제인 사랑의 시작과 또 다른 시작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자, 정혜>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러브토크>에서 먼저 알아차려야 할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점은 이 영화를 볼 때 중요한 실마리다. <러브토크>는 인물들이 그 조건을 어떻게 털고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낮은 계단을 여러 번 밟아 오르듯 아주 조금씩 전개된다. 또는 하기 힘든 이야기를 여러 번 쉬어가며 하듯 천천히 진행된다. 그렇다고 동어반복의 군더더기는 없다. 써니(배종옥)의 집에 방을 얻기 위해 지석(박희순)이 찾아오면서 시작한 영화는 사랑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 <러브토크>의 DJ 영신(박진희)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 프로그램을 써니는 퇴근길마다 항상 듣는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전화도 걸지만, 긴 고백을 하지는 못한다. 안마사인 써니는 자기의 험한 일상을 고백할 용기가 없다. 한편으로, 엄마가 즐겨보는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빌리기 위해 비디오숍에 왔던 영신은 대학 시절 한국에서 연인이었던 지석을 만난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집 앞을 나서던 써니는 지석과 영신을 보고 둘을 파티에 초대한다. 지석에 대한 써니의 남모르는 애정은 이미 많이 커져버린 뒤고, 옛 연인 지석에 대한 영신의 미련은 현재를 흔들 만큼 다시 또 시작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이 하나의 관계로 묶이는 곳, 여기는 LA다.
이윤기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선택한다. 그중에서도 언제나 자기 생활권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여자, 정혜>의 정혜가 그녀였는데, 거기서 그녀는 한명이었다. 그러나 <러브토크>에서 그 주인공은 둘이 되었다. 우편 취급소 직원 정혜는 집과 직장을 오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 유사하게도 써니는 퇴근길에 술 한잔 하고 가자는 동료의 간절한 애정공세에 “내가 언제나 이 시간이면 집에 곧장 들어가는 걸 모르냐”며 거절한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시각 라디오 DJ인 영신은 매일같이 방송을 한다. 그 둘은 같은 시간, 각자의 자리를, 매번 찾아간다. 적어도 <러브토크>가 방송되는 그 시각만큼은 그 둘은 같은 세계를 산다(심지어 그 둘 사이를 잇고 있는 지석조차 매일 밤 같은 스트립바를 찾아 같은 여자에게 돈을 주고 밤시간을 때우고, 영신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앉아서 똑같은 한국 드라마만 본다).
자기의 자리에 묶여 있다는 것이 정혜에게 일상의 연속이었다면, 써니와 영신이 각자의 자리에 묶여 있다는 것은 혹은 서로의 자리를 묶어내고 있다는 것은 교감의 신호이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 교감의 첫 번째 매개물은 역시 그녀 둘 사이에 등장해 파열을 일으키는 지석이라는 남자(써니는 누울 수 있도록 다리를 빌려달라고 하고, 영신은 한번 안아달라고 한다)지만, 그들의 관계를 감싸고 있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매개물은 <러브토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결국, 정혜가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줍고, 그리고 낯선 남자에게 저녁을 초대하듯, 써니와 영신의 오랜 정박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물론 그것은 희망의 정조로 가득하다. 그런데 <러브토크>에서 그 희망의 정조는 자기의 자리를 벗어날 때 생기는 것이다. 정혜에게는 마침내 그 길의 동선을 거스를 때 희망이 싹튼다. <러브토크>에서는 써니가 LA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두는 영신이 지석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희망이 생겨난다. 영화는 <러브토크>에 날아온 두개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후반부를 장식하는데, 영신의 엄마가 영신에게, 써니가 자신의 딸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 둘은 그 편지로 다시 한번 그들이 정박해 있던 자리,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없는 자리에서 대미의 교감을 나눈다. 요약건대, 과거에 매인 채 정박의 삶을 살던 인물들이 뭔가 계기를 통해 그 과거에서 벗어나 자기의 심리적 위치와 동선을 바꾸는 것, 그럼으로써 삶의 동력을 얻는 것이 좀더 분명한 이윤기의 플롯 구조다.
<러브토크>에서는 그 심리적 변화를 지리적 이동을 통해 보여준다. LA를 뜨는 것이다. 써니와 영신은 처음에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왔는데 그게 더 나를 가둬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더 낯설고, 더 크고, 더 거친 세상에 속해 살아야 하는, 그럼에도 쉽게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은 더 제한적이고 더 단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섞여 있는 세상과 친하지 않으면 정박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떠남으로써 다시 자기를 찾는다. 이것이 바로 정박의 삶을 털고 일어나는 <러브토크>의 드라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러브토크>는 이 말을 실천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영화다. 결국 그들이 자리를 옮기면서 찾아 떠나는 사랑의 대상은 적극적인 그들 자신이다. 그래서 정혜가 대상으로서의 남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할 때 <여자, 정혜>는 끝나고, 써니와 영신이 그 자신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 순간에 <러브토크>는 멈춘다. 전작에 비해 오히려 캐릭터가 덜 잡히거나, 특정한 인물(누구보다 지석)이 주체가 아닌 환영처럼 보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이완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하는 과정에서 생긴 흠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윤기의 가능성은 독백을 넘어 교감을 보고 싶어하는 것에 있다. 말하자면 <러브토크>는 형식적으로는 제자리걸음을 했고, 개념적으로는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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