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홍상수 감독의 칸느 입성을 축하한다. 그토록 열심을 문을 두드리더니 드디어 해외의 우수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칸느의 그런 선택에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칸느 언저리를 배회하게 만들었던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별반 다른 것도 없을뿐더러 감흥 또한 적기 때문이다. 왠지 뒤끝이 석연치 않은 화장실처럼 어딘가 귀결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 소견으로 홍상수 감독은 좀더 일찍 칸느에 입성해야 했다고 본다.
홍상수 영화의 특징은 삶의 한 순간을 뚝 떼어놓은 느낌이라는 것. 하지만 별 의미 없이 떼어놓은 삶의 한 부분이었다면 누구도 홍상수에게 지지표를 던지지 않았으리라. 그 의미 없음에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었던 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좀처럼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왜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는 것인지. 남녀의 그렇고 그런 만남이 반복될 뿐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각자의 몫으로 돌려놓은 듯. 하지만 홍 상수가 루이 아라공의 ‘미래의 시(時)’라는 시(詩)에서 영화의 제목을 떠올렸다고 하니 그 시의 일부를 읽어보면 약간은 그 해답이 보이기도 한다.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영혼을 장식하는 컬러 물감이다./여자는 남자를 활기 있게 해주는 떠들썩하고,/우렁찬 소리이다./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거칠어질 뿐/열매 없는 빈 나뭇가지에 불과하다./여자가 없으면 남자의 입에서는 거친 들 바람이 나오고/그리하여 남자의 인생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황폐해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참 대책 없는 제목이다. 하긴 뭐 홍 상수의 전작들 치고 어디 범상치 않은 제목이 있었던가? 대부분 영화 제목하면 한마디로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할 단어로 누구 나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조합을 꿈꾼다. 하지만 유독 홍 상수의 영화는 제목만으로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지 어떤 영화일지 짐작할 수 없다. 이처럼 독특한 제목만으로 한 특징을 읽어낼 수 있는 감독이 또 있었던가? 또한 홍 상수의 영화에는 참 애매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등장한다. 어떤 난관도 어물쩡 넘어가는 태도, 자신의 생각은 뚜렷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그렇다고 그걸 완전히 감추지도 않는 인물들. 특히 여자들의 성격이 똑 떨어지는데 반해 남자 캐릭터들의 성격이 더욱 그렇다. 7년 만에 만난 선배 헌준(김태우)과 후배 문호(유지태)의 첫 만남에서 우리는 이들의 성격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만을 슬쩍 던져보다가 상대가 강하게 치고 나오면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한발 뒤로 물러서는 대화들. 때문에 이들은 서로의 끝말을 자신의 대사 첫마디에 올려놓는 단어 반복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동안 그려왔던 반복구조에 이번에는 반복대화까지 첨가해 각기 다른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부분 중첩되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