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어두운 서울의 밤거리, 한 여자가 차를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대낮에 하는 컬투쇼이다. 아, 그녀는 생방송 라디오를 듣는게 아니라, 녹음된 파일을 듣고 있었다. 그녀가 듣고 있는 사연은 '생식체험'에 관한 사연이다. 잠시 후, 그녀는 어두운 골목에서 여성을 폭행하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사소한 그녀의 목격은 그녀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의 발단이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오프닝이다. 그런데 왜 굳이 그녀가 듣는 것이 조용한 클래식이나, 시끄러운 대중가요가 아닌 라디오의 '생식사연'이었을까? 이것은 그녀,즉 해원의 심리상태를 대변한다. 생식이란 자연 그대로의 삶이다.무질서하고 복잡하고, 이기적인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 중 하나인 은행창구 업무일을 하는 혜원이 현재 자신의 삶에 지쳐있다. 그리고 무질서하고 복잡한 현재의 삶을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삶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의 그러하듯이 현재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도망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라디오 사연을 통한 다른사람들의 체험을 들으면 위안을 삼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듣고 있는 '생식체험'은 컬투쇼 사연중에 레젼드로 불릴만큼 매우 웃긴 사연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연을 녹음해서 듣고 있는 해원은 전혀 웃지 않는다. 그녀는 늘 무뚝뚝하다. 무질서하고 복잡한 삶에 지쳐서 웃음조차 잃고사는 현대인의 모습 그대로이다.
앞서 말한 해원의 사소한 목격에서 시작한 사건으로 인한 그녀의 히스테리는 결국 휴직을 부르고, 타의에 의해 해원은 오랜만에 휴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막상 휴식을 가지자 해원은 딱히 할일도 갈곳도 없다. 그런 해원의 모습은 늘 바쁜 일상을 쳇바퀴돌듯 살다가 잠시 여유를 가지게 되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현대인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생각난 한 사람, 늘 그녀에게 놀러오라고 편지를 쓰던 어릴적 친구 복남이다. 그리고 그녀는 짐을 챙겨 어릴적에 잠시 살았던 무도로 떠난다. 그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섬에 도착한 해원을 복남은 온몸으로 반겨준다. 그리고 해원이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복남은 친절하게 해원을 대해준다. 해원 또한 오랜만에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서 느끼는 여유로움이 싫지 않다. 한가하게 섬을 돌아다니며 그녀가 녹음해 듣던 생식체험에서 들었던 토끼풀도 뜯어 먹어보는 듯, 자연 그대로의 삶을 잠시 마음껏 느낀다. 하지만 그러한 여유로움도 잠시, 해원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복남의 삶 이면에 숨어있는복남의 남편과 섬사람들의 추악한 폭력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앞서 겪은 하나이 사건으로 복남의 삶을 바로잡는데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는 그러한 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려 하고, 그러한 그녀의 행동은 친절한 복남씨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친절한 복남씨의 복수가 시작된다.
사실 '남편의 폭력과 억압을 견디며 살던 여자의 복수 이야기'는 너무도 흔한 이야기이다. 한국 공포의 근원이라고도 할수 있는 '전설의 고향'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처녀귀신들은 남성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그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복남살인사건의전말(이하<김복남)>은 이러한 진부한 복수 이야기에 현대인들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한 삶의 모습을 더하여 기족의 복수극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단연 압권은 서영희의 연기다. 그동안 여러편의 작품에서 평범한 캐릭터보다는 비범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그녀는 이번 영화 <김복남>에서 주인공 김복남을 맡아 순수함과 광기를 동시에 지닌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바보스러울만큼 순수한 모습으로 무도 남자들의 억압과 폭력을 묵묵히 견뎌내며 어릴적 친구였던 혜원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전반부의 순진한 모습과 한가지 사건을 겪은후 광기에 휩싸여 처절한 복수를 시작하면서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하는 후반부의 광기어린 모습을 서영희는 김복남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연기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준다. 여배우로써 자칫 꺼려지는 장면들이 꽤나 있음에도 서영희는 영화의 주인공답게 몸을 사라지않고 연기하여 영화의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신인 감독인 장철수감독의 연출과 편집 또한 인상적이다. 스릴러 영화로써 긴장감을 유지하는 감각적인 카메라 위치와 편집으로 장철수 감독은 영화내내 긴장감을 놓치지않고 유지시키고 있다. 또한 잔인한 장면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앞서 개봉한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와 비교하면 이 영화의 살인 장면은 잔인하기 보다는 광기를 지닌 섬 여자가 보여줄수 있는 날것 그대로 살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감독은 그러한 날것 그대로의 살인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잊지않는 센스를 발휘하여 끔찍한 장면 다음에 웃음을 이끌어내어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동안 개봉안 한국 스릴러 영화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 영화의 눈에 뛰는 작품이다.. 올해 개봉한 스릴러 한국 스릴러 영화 <용서는없다><베스트셀러><파괴된사나이>가 각각 주인공의 모성애와 부성애를 바탕으로 폭력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꾸며내었지만, 관객들에게 공감되지 않는 허술한 이야기를 주연배우 설경구, 엄정화, 김명민의 명연기로 메꾸려는 모습을 보여왔다.하지만 이영화 <김복남>은 익히 익숙하면서도 진부한 이야기인 '남편의 폭력과 억압을 견디던 여자의 복수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관객들에게 이야기 전개에 있어 최소한의 공감은 얻어내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 무도 남자들에게 바보같이 당하면 살아가는 복남의 모습을 연속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복남에게 동정심을 심어주고, 후반부의 복남의 처절한 복수를 관객들이 정당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영화 <김복남>의 이야기 구조가 다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 뛰어나거나 완벽한 구성을 지녔다고 할수는 없다. 이 영화 또한 이야기 구조에 있어 몇몇 부분 아쉬움이 남는다. 일례로 영화의 주인공인 복남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워낙 강하다보니 또다른 주인공 해원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해원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목격자이자 요즘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수 있는데, 그러한 캐릭터적 특성이 복남에 비하여 덜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김복남을 연기한 서영희에 비해 해원을 연기한 지성원이 연기를 못한것처럼 보이고 있는데(사실 일부 장면에서 지성원의 연기는 아쉽지만...) 이것은 배우의 연기 탓이라기 보다는 캐릭터가 지니는 힘 자체가 서영희가 연기한 김복남 역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성원의 연기가 그렇게 보이는듯 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 영화 <김복남>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인의 복수이야기'의 이면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고 있다. 복잡하고 무질서한 사회에서 빡빡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해원이 각각 서울과 무도에서 겪게되는 두가지 사건에 대응하는 그녀의 행동을 바탕으로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타인이 어떠한 위험에 쳐했을때, 과연 자신에게 이익은커녕 피해가 올수도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사람의 삶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행한 사소한 행동하나가 다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수 있으며,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그러한 운명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옆집에서 살인사건이 나도 신고하기보다는 자신의 집 대문을 꼭 닫아버리고 모른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 감독은 지금 당장은 현대사람들이 타인의 삶에 모른척하여 안위를 보장받을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그러한 사건이 주인공이 되었을때 타인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라면 과연 기분이 어떨지, 과연 그게 올바른 행동이었는지 생각해볼수있는 그런 영화이다.
오랜만에 꽤나 볼만한 한국 스릴러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그렇다면, 김복남의 복수는 과연 성공했을까? 9월 2일 극장에서 확인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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