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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용한' 영화 하얀 리본
ki2611 2010-08-18 오전 10:28:36 459   [0]


 사건의 시작은 의사의 낙마사고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왕진을 마친 뒤 말을 타고 귀가하던 의사가 누군가가 설치한 줄에 걸려 말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의사는 쇄골이 부러지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사소한 사고사로 시작한 사건들이 점점 불안을 키우는 것처럼 수위가 높아집니다. 평화롭기만 보이는 이 시골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우선 1913년이라는 시대를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이 미묘한 시점은 근대와 현대의 과도기적인 시점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비극과 전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막 터지기 직전의 시점이기도 하지요. 이런 즉물적인 상징적 장치가 아니더라도 영화 내의 숨 막힐 정도로 순수와 복종, 종교적 엄격함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영 마음에 걸립니다.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른들. 질식할 것 같은 순수의 규율과 종교적 도덕성으로 자식들을 억압하는 목사 아버지. 그런데 또한 이런 어른들은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방 남작의 권한 아래 놓여 있습니다. 남작의 권력적인 억압이 어른들에게 행사되어지고, 어른들은 당연한 풍습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이런 복종과 억압의 악순환이 이 영화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군요.


 아이들에게 순수와 종교적 청결함을 요구하며 폭력을 당연하게 행사하는 어른들의 세상은 추악하군요. 마을에서 덕망을 얻고 있는 의사의 사생활은 추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영적 지도자로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며 신의 말씀을 따른다는 목사의 아이들에 대한 관대함은 끔찍할 정도로 숨 막히는 제재와 억압입니다. 마을의 존경받는 남작 내외의 이중적인 사생활도 위태롭고 위선적이네요. 이 모든 거짓과 추악함을 모른 척 생활하는 이 마을의 질서와 모든 것들은 엄정하고 청교도적입니다. 검소와 신실함이 형식적으로 지배하고 있군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방화와 남작 아이의 실종사건과 구타, 그리고 정신지체아인 칼의 눈을 도려낸 소름끼치는 사건이 절정에 이르면 이 일을 저지른 이가 과연 누구일지 궁금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끔찍한 폭력의 순환에 대한 우화일지도 모르겠군요. 유일하게 이 사건의 숨은 비밀을 눈치 챈 주인공인 교사가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사건은 미완인 채로 마무리됩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 터진 것이지요. 사라예보에서 황태자 부부가 총격 암살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이제는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우위에 있었던 남작 또한 전쟁이라고 하는 또 다른 폭력의 상징 아래에 놓여 버렸군요. 마을 사람들을 지배하던 남작, 아이들을 억압과 순종으로 길들였던 마을의 어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에게도 말이지요.


흑백의 영화적인 시선은 고요하고 정밀하면서도 질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견고한 질서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성을 어린아이들을 통해 표출되는 것을 보는 일은 여전히 괴롭습니다. 그들이 피해자이면서도 잠재된 가해자로 폭력의 순환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섬뜩한 추측도 이 영화는 숨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장 전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로 화할 그들이 안쓰럽군요.


 처음부터 갇힌 새는 자유를 모른단다.


다친 새를 돌보겠다고 말한 어린 아들에게 목사는 그렇게 말합니다. 순수와 복종을 의미하는 하얀 리본. 마르틴과 클라라가 묶은 하얀 리본은 순식간에 그 의미를 달리합니다. 억압과 폭력, 추악함과 더러움. 처음 클라라를 중심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여자 아이들의 뒷모습은 영 아이답지 않더군요. 그 안에 숨겨진 섬뜩함이 흑백의 영상에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끝내 불온한 상징으로 바뀌는 하얀 리본. 이 영화는 마을의 분위기처럼 엄격하고 청빈할 정도입니다. 자제된 스타일과 검박한 흑백의 색채, 침묵하는 음악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치밀하게 직조된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끔찍하지만 그 순환에 어린 아이들까지도 소모될 수밖에 냉정하고도 비관적인 영화적 내용만은 지독하게 붉군요. 그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용한' 영화가 끝내 두려워집니다.



(총 0명 참여)
owonh1
역사영화는 항상   
2010-08-25 01:36
qhrtnddk93
그래요   
2010-08-19 16:07
hooper
감사   
2010-08-18 16:29
k87kmkyr
좋은정보입니다   
2010-08-18 15:40
l303704
구체적인 리뷰 잘 보았습니다.   
2010-08-18 11:32
leeym9186
그렇군요~   
2010-08-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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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2009, The White Ribbon / Das weiße Band)
배급사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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