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태동의 전조....★★★★
200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은 황금종려상 수상작답게(?) 오락적이거나 유흥으로서 즐기는 차원의 영화적 재미를 단 1%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숨이 턱턱 막일 정도의 높은 밀도로 한 평온한 시골마을을 아름다운 흑백 화면에 담아 내보낸다. <하얀 리본>은 외지 출신 교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스스로도 이 이야기가 완전한 사실인지 애매하다고 밝히고 있다. 외지 출신 교사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 화자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경험한, 정확하게는 전체주의, 파시스트, 나치즘을 경험한 독일인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하얀 리본>은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13년 독일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의사는 누군가 고의적으로 설치해 놓은 줄 때문에 낙마해 크게 다친다. 이어서 마을엔 기괴한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창고가 불에 타고, 아이가 실종되며, 끝내는 한 아이의 눈이 도려내지기 까지 한다. 누가 저질렀는지 모를 끔찍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마을엔 불안과 두려움의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하얀 리본>은 마치 스릴러 영화와 비슷한 외피를 가지고 있다. 조용하고 평온했던 시골마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참혹하고 기이한 사건들은 과연 누구의 소행이란 말인가? 그러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누구의 소행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그건 그저 논리적 추론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감독은 관객이 이 영화에서 누가 범인인가보다 왜 이런 범죄가 발생하는 가에 관심을 두길 바란다.
다시 영화를 정리해보자. 이 마을은 중세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귀족의 땅에서 소작농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이러한 질서는 신부에 의해 그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누구라도 이 질서를 깨트리는 행위는 용서되지 않으며, 어린아이라도 마찬가지다. 즉, 기본적으로 이 마을의 주된 대립 기제는 계급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내재된 계급갈등은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며, 전체적인 마을의 질서를 규정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만 묘사될 뿐이다. 다만, 물질을 장악한 귀족과 정신세계를 장악한 신부에 의해 유지되는 마을의 질서 체계는 그 자체로 이 평온한 시골마을이 억압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갈등은 세대간 갈등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왠지 미심쩍다는 듯 비춘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이야기를 엿듣고 뭔가를 도모한다. 그래서 교사이자 이 영화의 화자는 아이들이 몇 건의 기이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확신하게 되고, 논리적으로도 그러한 의심에 기울어진다. 아이들이 팔에 두르는 하얀 리본을 강요된 도덕과 순수의 상징이라고 본다면, 이는 곧 나치들이 팔에 두르고 다녔던 완장의 의미이며, 그 반대 지점에선 유태인들이 차고 다녔던 육각형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치 치하에서 완장을 두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유태인들을 앞장서 죽이고 박해했는가. (만화 <아돌프에게 고한다>) 영화를 보면 영화 속 아이들이 자라 완장을 두른 나치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아이들이라고 하는 가장 순수한 존재가 가장 잔인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묘한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만 봤을 땐 아이들이 가해자로 비춰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영화 또는 전체주의의 역사 전체적으로 볼 때, 그저 활용의 객체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며, 그 역시 억압의 결과물일 뿐이다. 영화에서도 어른들은 전체주의적 질서를 아이들에게 억압으로 강요하며, 아마도 이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 묘한 건, 몇 차례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에 대해 영화 속 인물들, 좀 더 정확하게는 영화 자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들은 마치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띄엄 띄엄 그려져 있고, 파편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사건들을 하나의 연결된 사건으로 인식하는 건 그저 영화 한 편에 같이 담겨있기 때문인 듯 느껴진다. 우리는 역사에 있어 우연한 사건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알고 있다. 어쩌면 감독은 이러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처럼 우연적이고 파편적인 사건들이 바로 곧 다가올 전쟁과 전체주의의 전조였다고.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스크린(!) 그 자체다. 흑백 영상은 실제 1913년 당시의 당큐멘터리 화면을 보는 듯하고, 독일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작품에서 빌려 왔다는 이 영화의 비주얼은 마치 사진작품을 관람하는 듯한 감상에 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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