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뒤 바로 리뷰를 적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서 지금 바로 적지 않으면 실이 엉키듯 생각이 엉킬 것 같아서다. 많은 관객들이 인셉션을 본 뒤 영화의 해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은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결말의 해석에 대해서 다각적인 의견을 늘어 놓고 있다. 필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뭐가 이리 바뀌는 장면이 많아?", "이 장면은 앞의 장면과 무슨 상관이 있는거지?"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솔직히 <인센션>은 친절한 영화에 속하지 않는다. 왜? 크리스퍼 놀란이니깐! 굳이 친절히 이것 저것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메타포들을 캐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테니깐. 그리고 그것을 노렸던 감독의 입장에선 충분히 성공 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개봉 전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 큰 기대를 끌어 모았다. <다크나이트>에서 그의 위용은 이미 확인된 바 있기에 그의 이름만으로도 극장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별 다섯개를 전부 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1. 꿈의 설계
꿈을 설계한다. 참으로 매력적인 소재가 아닌가. 그 중에서 설계자는 세상을 창조 할 수 있는 역할을 맡는다. 그 세상에 존재하는 인물은 꿈의 주인의 무의식에 내재된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이 꿈속의 꿈속의 꿈이다. 첫번째 꿈과 두번째 꿈은 어느 정도 넘어갈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설원은... 꿈이라고 친다처도 관객의 입장에선 좀 쌩뚱 맞아 보인다. <인셉션>의 스케일 보여 주기용인가? 싶었다. (가끔은 지독히 무서운 악몽을 꿀 때도 있고, 말도 안되는 꿈을 꿀 때도 있을텐데.)
2. 복잡하다. 그러나 복잡하지 않다.
영화가 복잡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복잡한 이야기는 치밀해야 한다. 또한 복잡한 것 같은데 복잡하지 않다는 것은 큰 허무감을 불러 온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혹자들은 이 장면 하나만을 두고 결말이 꿈이다 혹은 현실이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여지를 일으키는 마지막 컷은 정말 치졸한 것이 아닌가싶다. 이 장면의 해석을 위해 영화 2시간 30분에 가까운 영화를 또 헤집어 봐야한다니. 그 장면이 없었다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 팽이는 곧 멈추었을 것이다. 즉 코브는 현실로 돌아 왔다고 생각한다. 코브가 있던 4단계는 '림보'라는 특수한 무의식 계층이다. 그 이하의 무의식 층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코브가 사이토의 총에 맞았다면 '림보'가 진실이라 믿지 않는 코브는 100% 현실로 돌아 온다.(다시 꿈으로-비행기 안의 상황으로 갈 수 없다.) 문제는 사이토인데 그가 비행기 안으로 돌아 왔으니 '림보'에서 탈출한 것이 맞다.
또한 다른 축에선 애리어드니(설계자)가 코브에게 인셉션을 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건 조금 오버라고 생각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정말 나쁜 감독이다. 그녀가 인셉션 했다는 증거는 영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코브의 인셉션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코브는 설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가 필요했다. 이미 코브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 층위의 세계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다만 애리어드니의 존재를 제대로 해석한다면, 그녀가 인셉션한 것은 사별한 아내로부터의 해방이다. 코브의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코브의 장인이 애리어드니를 코브에게 붙인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어떻게 결말을 내던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가 감독의 손을 떠나 상영이 시작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감독의 영화가 아닌 관객의 영화가 된다. 당신이 해석한 당신만의 영화가 된다.
마지막 컷. 림보냐 림보가 아니냐. 그것도 중요하지만. 팽이는 결국 돌다가 언젠가 멈춘다는 것이다. '인셉션' 안에서 팽이는 멈추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팽이라는 것은 결국 멈춘다. 코브의 토템이 왜 팽이인지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 덧
a.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한비즈니스맨'설) 모든 건 코브의 '백일몽'에 불과했다. 모든 내용은 일등석을 타고 귀국하는 평범한 비즈니스맨 코브가 기내에서 잠시 졸면서 꾼 꿈에 불과하다. 인셉션도 드림머신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 모두 존재하지 않는 꿈일 뿐이다.
- 이런 해석은 너무 하지 않는가? 이런식의 해석이라면... 어떤 영화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b. 유서프를 만난 이후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서프지하실-꿈'설) 코브는 지하실로 내려가 유서프의 약물로 꿈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신약을 테스트 삼아 꿈에 빠져들었던 코브는 황망히 일어나 자신의 '토템'을 작동시키려 하지만 사이토의 참견으로 못하게 된다. 그 이후 영화는 단 한번도 토템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코브는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인셉션이 성공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며 달콤한 꿈을 계속 꾸고 있는 것이다.
- 토템을 돌리지 않았다고 해서 이렇게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안정제를 맞는다 해도 사람이 잘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유서프도 그들은 4시간의 수면만을 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깨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이라는 말까지도.
c. 인셉션은 사실 코브가 타켓이었다. ('인셉션-코브타켓'설) 포럼에서 강하게 대두되는 이론이다. 사실 인셉션은 피셔의 머릿속이 아니라 코브의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심는 작전이었다. 한번 생각해보아라. 코브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고, 그의 장인이자 말의 아버지인 마일즈 교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위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았을까?
똑똑하고 재능있는 건축가인 아리아드네를 소개해준 것은 코브를 위한 인셉션 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자. 엔딩 씬에서 코브가 공항에 내렸을 때, 프랑스에 있어야 할 마일즈 교수가 미국 공항에서 코브를 맞이하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반기기까지 한다. 피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장례식과 비행 일정을 어떻게 알았으며 코브가 말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어떻게 예상했는가?
코브에게 인셉션을 실행할 수 있는 건 오직 아리아드네 뿐이다. 그녀는 영화 내내 말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하며, 코브의 꿈 속을 들여다 본 유일한 사람이다. 또한 코브의 토템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본 유일한 사람이다. 아마도 인셉션은 전적으로 코브에게 실행된 것이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하고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작전인 셈이다.
또한 '아리아드네'란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보아라. 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a ball of yarn)'을 건내주어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크레타의 공주이다. 바로 무의식과 죄책감의 미궁에 빠져있는 영웅 코브를 도와서 탈출하게 도와주는 존재이다. 신화 속 미궁을 만들었던 사람은 '아리아드네'가 아닌, '다이달로스'였다.
곁가지로 생각해본다면,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코브가 꿈에서 황망히 깨어난 것을 기억하는가? 그 때가 아리아드네가 코브의 머릿 속에 인셉션을 심어놓은 때일수도 있다.
- 앞 서 썼듯이 이 추측에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 결말은 현실이냐 아니냐의 답이 될 수는 없다.
d. 크리스 놀란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셉션을 실행하는 것! ("인셉션-관객타겟"설) 생각해보라. 놀란 감독은 우리들의 머릿 속에 생각을 심어버렸다. 엔딩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불완전한 의심은 계속 남을 것이다. 어떠한 이론이나 설명도 완벽하진 못하며, 못할 것이다. 왜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팽이가 멈추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지? 놀란 감독은 우리 머릿 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어버렸다. 마지막 엔딩 샷의 팽이를 통해서 우리는 '말'이 림보에 빠져버렸듯이 서서히 현실과 꿈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여기기 사작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어떤 장면이 현실이고 꿈인거야?'라고 되물을수 밖에 없다.
- 영화를 만드는 이유. 그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관객을 타겟으로 설정하지 않는 감독은 없다.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라고 해서 관객들은 그 의미를 열심히 찾아서 보이는 것이다. 감독들은 끊임 없이 관객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인셉션>은 그보다 더 강렬했지만.
e. 코브는 인셉션을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인셉션-노멀엔딩"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코브가 현실로 돌아와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림보에서 코브와 사이토는 결국 꿈임을 서로가 자각하게 되며 사이토는 총을 든다. 아마도 사이토는 코브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림보를 탈출한 것이다.
림보에서 벗어난 뒤엔 강력한 진정제의 효과가 떨어진 뒤 '킥'을 통해서 Lv1.현실의 비행기로 되돌아 왔을 수도, 혹은 이미 Lv.2-4까지 붕괴된 상태이므로 단 번에 현실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결론은 마지막 부분에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코브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의 옷과 아이들의 나이는 코브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봤을 때 모습 그대로이다?! 이로 인해 노멀엔딩설은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혹 자는 놀란 감독의 의도적인 열린 결말을 위한 연출이라고도 결론 짓는다. 추가) 아이들의 옷과 나이가 약간 다르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거의 동일해보일 정도로 같은 모습이라는군요. 역시 의도적인 연출인듯 합니다.
- 꿈이라는 곳은 현실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흐른다. 어쩌면 코브가 아내를 잃은 시기는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코브가 회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현실의 아이들인지 꿈 속에서의 아이들인지 확인할 바가 없으니 생각하기 나름이겠다.
f. 엔딩은 림보에 갇힌 코브의 꿈이다. ("코브-림보"설) 코브는 림보 안에 여전히 있다고 본다. 우선,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아이들의 모습이 첫번째 근거다. 두번째로는, 엔딩의 팽이 씬이 위태위태하게 계속 돌고 있는데, 코브는 신경쓰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서 걸어간다. 지금까지의 코브가 보여준 토템에 대해 신경쓰고 주목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코브는 자신이 꿈 속에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만족의 길을 택한 것이다.
또한,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림보에서 사이토가 코브 혼자만 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없어진 코브는 결국 자신의 림보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던 것이다.
-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를 빈다. 그리고 아닐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코브의 림보가 갖는 한 가지 특징은 바다다. 그의 세계는 바다를 끼고 있고 바다를 통해 림보로 들어 설 수 있다. 그런데 앞의 코브의 림보와 기내에서 펼쳐지는 림보는 이전의 코브가 구축했던 세계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
글쓴이 블로그 - 제가 쓴 글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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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 부분 발췌 - 늑대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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