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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v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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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1 오전 10:3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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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
-그해 칸느, 이상한 바다-
1999년 칸느는 이상했다. 그해 경쟁부문 출품작 리뷰를 읽으면서 한참 웃었던 생각이 난다. 짐 자무쉬가 갱 영화를 들고 온 것부터 시작해서, 데이빗 린치는 감동의 휴머니즘 영화를, 알마도바르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다룬 무거운 멜로를, 레오 꺄락스는 알 수 없는 포르노그라피를 들고 왔다. 이 어처구니없는 리스트 중 단연 돋보였던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의 아동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이었다. 절제된 화법의 폭력 영화를 만들던 그가 '아동용 영화'라니, 새롭게 등장한 작가로서 기타노 다케시를 주목하고 있는 관객과 평론가를 대놓고 놀려도 이렇게 놀리긴 힘들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슬럼프-
꼭 영화뿐만 아니다. 소설, 만화, 음악 등 모든 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이 가끔 이런 짓을 한다. 무겁고 어렵고 복잡한 대하소설을 쓰던 작가가 갑자기 작품을 중단하고 꽁트를 쓴다든지, 기괴한 음악을 하던 롹그룹이 난데없는 재즈나 발라드 앨범을 낸다던지 하는 식의, 뚜렷한 개성의 창작자가 갑자기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여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창작자들이 벌이는 몸부림 중의 하나다. '슬럼프'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슬럼프다 싶으면 다 때려치우고 쉬는 사람도 있고, 더 노력하고 노력해서 슬럼프를 넘어서려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것, 창작의 스트레스 없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함으로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사람이 많다. 데이빗 린치처럼 의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고, 기타노 다케시처럼 무의식적일 수도 있으며, 놀랍게도 후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당사자는 왜 자기가 엉뚱한 짓을 하는지 모르면서 열심히 엉뚱한 창작물에 매달린다. 하지만 즐기듯이, 특별한 스트레스 없이 창작물을 만들다 보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오는 스트레스와 슬럼프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극복해 버리게 된다.
그건 창작이라는 행위가 반드시 논리적인 방법을 따라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론'과 '논리'에 따라 예술을 하는 사람보다는 '감각'과 '느낌'으로 하는 예술가가 더 많다. 때문에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역시 감각과 느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감'으로 만들어왔는데 갑자기 '감'이 떨어지니까, '감'을 쫓아서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것이다…… 이쯤에서 뭔가 멋진 예를 들어야 이 주장이 뒷받침될텐데…… 피카소가 종합적 큐비즘과 '게르니카' 사이에 '신고전주의'를 시도했었다는 것이 올바른 예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앨리스 쿠퍼의 'You and me' 같은 노래나.
그러면, 비트 다케시를 포함한 우리시대의 작가들이 동시에 슬럼프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단 말인가? 물론 그냥 우연의 일치일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동시에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재밌다. 아닌게 아니라 1999년은 모두가 두려워하던 세기말이었고, 21세기를 앞둔 막연한 불안감이 사람들을 짓누르던 때였다. '나라도 뭔가 변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모를 일이다.
-기쿠지로의 여름-
<기쿠지로의 여름> 다케시가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즐기듯 만든 영화다. 원래 간단한 이야기인데다가 즉흥적으로 추가한 듯한 상황설정도 많아서 영화가 여유롭다 못해 많이 비어 보인다. 그 빈틈을 메꾸는 것은 다케시의 변함없는 스타일인 침묵과 여백의 미학인데, 이것이 독특한 유머와 결합하면서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
다케시의 영화 중 가장 낯선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를 느긋하게 이끌고 가다가 뭔가 안 풀린다 싶으면 다케시가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인 영화라 오히려 그의 개성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폭력과 패배주의'에서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유머'로 감정의 표출만 바뀌었을 뿐, 그의 스타일은 그대로다. 낯설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보이는대로 즐기면 된다.
다케시를 내리누른 스트레스는 뭐였을까. 그의 영화마다 가장 중요한 주제/소재였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에 는 등장하지 않는 '폭력'? 혹은 <하나비>에 쏟아진 찬사와 평론가들의 주목? 아니면 사람 죽이는 영화 만드는게 지겨워서? 글쎄, <기쿠지로의 여름>으로 신나게 놀았으니 다음 번에는 뭔가를 들고 돌아오겠지, 이번 베니스 경쟁부문에 나선 <인형들>을 기대해봐야겠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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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1999, Kikujiro)
배급사 : (주)영화사 진진
수입사 : (주)영화사 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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