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탁 시인(김용택 시인)은 ‘시는 보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영화는 이를 이미지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에서 몇 차례 시 낭송회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이보다 종이에 손으로 써내려 간 글씨가 화면 가득 담길 때, 시에 대한 감상은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오롯해진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영화 <시>는 시를 소재로 했고, 시와 관련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는 해도, 전반적인 흐름이라든가 느낌은 시(문학 장르로서의)라기보다는 수필 쪽에 좀 더 가까워 보인다. 물론 이게 딱히 결점이라는 건 아니다. 단지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잔잔한 물의 흐름처럼 영화 역시 잔잔하게 흘러간다.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은 영화 초반부에 마치 일상사처럼 소개되었고, 이후 별다른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 <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영화 전체를 감싸고도는 진지한 분위기는 화면에의 몰입도를 유지시켜 준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영화를 보다 뜬금없이 이 말이 떠오른 건, 영화 속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장 첨예한 정치성을 이 영화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그런 것을 보고 싶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니라면 참여정부의 문광부 장관을 역임한 이창동 감독의 경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정확하게는 투신의 이미지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영화는 누군가의 투신(죽음)으로 시작해서 누군가의 투신(죽음)으로 막을 내린다(마지막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나는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또 하나 들자면 4대강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선 그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모습조차도 정치적으로 느껴진다)
2009년 5월 23일, 검찰 조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간략한 유언을 남긴 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일 년, 공교롭게도 참여정부의 문광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사람인 이창동 감독은 누군가의 투신으로 시작하는 영화를 선보였고, 같이 칸 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진보적 성향의 임상수 감독도 누군가의 투신으로 시작하는 <하녀>를 선보였다. 이건 그저 우연의 일치일 지도 모르고, 노무현의 투신이 심리적으로 강하게 인장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투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시>의 투신이 노무현을 떠올리게 하는 건 노무현이 조그마한 도덕적 흠집에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노무현을 둘러싼 대부분의 의혹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검찰의 먼지털이식, 창피주기식 수사는 노무현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과 관련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노무현이 단골인 식당 주인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지경이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 창피를 아는 인간은 자존심과 존엄이 있는 인간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의 정치적 지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노무현은 상당히 매력 있는 정치인이었고, 내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인보다 어떤 면에선 마음이 더 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창동은 분명하게 미자를 가해자로 분류해 놓았다. 아무 것도 몰랐다고 변명할 수도 있고, 그저 어린 손자의 한 때 실수라고 해명할 수도 있지만, 미자는 그 모든 걸 자신의 죄로 인식했다. 한 인터뷰에서 이창동 감독은 청소년 범죄의 경우 부모 또한 가해자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어쨌든 미자는 최소한 지은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었고, 어떤 영화 평론가의 말대로, 미자의 도덕은 엄마의 도덕(영화 <마더>)을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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