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같은 학교 남학생들의 성폭력에 시달리다가 한 여학생이 자살한다. 노년의 미자는 그 죽음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녀는 소녀를 애도하며 방황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창동의 전작 <밀양>의 신애가 그렇듯 미자 역시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약자이다. 그녀는 가난하고, 병을 앓고 있으며, 손자를 맡아 양육하는 연약한 노인이다. 하지만 세상은 연약한 자에게 무관심하고, 소녀의 죽음을 돈으로 거래할 만큼 비정하기만 하다. 그런 현실을 목도할 때마다 미자는 죽은 소녀에게 마음을 쏟는다. 계기는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이 손자였기 때문인데, 죄책감으로 시작된 관심은 소녀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점점 깊어진다.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이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왜냐면 미자도 소녀처럼 지치고 소외받은 주변인이었으므로. 현실이 끔찍할수록 미자는 시에 몰두하며 사람들에게 묻는다. “시를 왜 쓰세요?”, “시상은 어디에서 오나요?” 그러나 그들은 늙은이의 소녀 취향쯤으로 여기고 애처로운 질문을 가볍게 흘려보낸다. 그런데 <시>가 <밀양>보다 더욱 절망적인 까닭은 미자가 한 번도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쳐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밀양>에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출구로 신을 찾았다가, 신에 저항하고 신을 뜨겁게 져버리는 신애의 행로가 동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미자는 처음부터 현실에 완벽하게 벽을 쌓는다. 더욱이 <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인지상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속물들이다. <밀양>에서 신애를 지켜주었던 종찬이나 그나마 기묘한 친절을 베풀었던 교회사람 같은 인물들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수면은 잔잔해 보이나 미자를 둘러싼 환경은 <밀양>보다 훨씬 끔찍하고 기괴하다. 하여 애초부터 체념에 빠진 미자는 세상과 소통하기를 포기한다. 손자를 붙잡고 “왜 그랬어?”라고 묻기는 하지만 대화를 시도한다기보다 자기 울분을 쏟아내는 모습이고, 딸에게 손자의 일이나 자기 병을 숨기는 것은 어머니의 속정만으로 볼 수 없는, 묘한 자폐의 징후가 보인다.
현실이 괴로울 때마다 그녀는 시작노트를 붙잡고 안간힘을 쓴다. 시는 그녀에게 현실을 견디는 힘이기도 했지만 자기모순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자는 그녀를 둘러싼 모순된 세상처럼 자기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은 절대악이고 미자는 희생자이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선의로 점철된 명쾌한 희생양은 아니다. 그녀는 시를 품고 세상에 저항하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벽돌을 빼듯 하나하나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방식으로 세상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비수를 꽂고, 가족들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의문을 남긴다. 대신 미자는 시를 한 편 남긴다. 그런데 그 시는 너무나 복잡하게 들린다. 아름답지만 참혹하다. 슬프다기보다 서글프게 들린다. 좋은 시이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여기서 복잡함이란 어떤 시가 지니는 겹겹의 상징성, 이런 문학적인 의미가 아니다. 미자의 시는 사냥꾼에게 화살을 맞고 죽은 사슴을 보는 듯 복잡한 심경이 들게 한다. 비참한 현실을 담고 있더라도, 끝내 인간의 곁에 머물러 있는 시는 어떤 안도감과 균형감을 안겨준다. 그런데 세상을 등지고, 관객을 냉정한 관찰자로 남겨둔 채 시의 세계로 떠난 미자는 우리에게 엄청난 무기력함을 남겨준다.
미학적으로 볼 때, <시>의 내러티브는 완벽하다. 그녀가 남긴 시도 뛰어나게 아름답다. 그러나 이 영화를 스크린 밖의 현실세계와 연결 지어서 다시 생각해보니, <시>는 거듭거듭 절망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시 쓰는 미자가 현실 세상과 무기력하게 단절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시와 현실 간의 골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현실은 비정하고 시는 무기력하다. 더욱 깊어진 불화 사이에 어떤 연결지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관객들은 닫힌 세계 안에서 무거운 숙제처럼 죄책감을 가득 안고 돌아서게 된다. 만약 시가 나를 지상에서 둥실 떠오르게 하는 거대한 풍선 같은 거라면 나는 풍선을 잡은 손을 놓고 싶다. 그리고 시집을 닫고 거리로 나서고 싶다. 미자가 왜 시를 쓰냐고 묻는 대신 손자나 딸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미자가 가엾고 안쓰럽다. 또한 그녀가 원망스럽다. 상처 같은 이 영화에서 깨어나 다시 시를 읽을 때까지는 잠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