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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못달아 실패한 숨은 걸작...강!!!!!추 노랑머리 2
darthfucker 2002-08-23 오전 12:19:46 2601   [7]
노랑머리2..
이 제목때문에 그리고 그 야리꾸리한 포스터 때문에 이 영화는 관객들로부터 그 가치를 제
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싸구려 에로물처럼 포장을 해놨으니 애초부터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공감할 만한 사람들
이나 고상한 족속들은 이영화를 기피했을 것이고, 몰카물 따위에 탐닉하는 변태양반들은 자기취향의 영화려니 하고 덜컥 봤다가 뭐 이딴 영화가 다있냐며 고래고래 욕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물게 양쪽 모두를 좋아하는 나 같은 괴짜들만 우연히 이걸 집어들었다가 정말로 매료됐을 것이다.

 사실 이건 애로물이 맞다. 성적 마이너리티(여기서 마이너리티란건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남성중심의 권력에서 배제된 집단 일체를 일컫는 포괄적 의미임 - 따라서 여성뿐 아니라 남
성성을 거부하는 남성까지도 모두 포함됨)의 방황에 관한 이야기이니 당연히 성적 주제를
담은 에로물이고, 다만 이영화는 '제대로 된' 에로물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그 얄딱
꾸리한 포스터만큼 정직한 것도 없고, 하등 잘못된 것도 없다. 잘못된 것은 어쩌면 그 포스
터의 코드를 인습적으로 곡해하는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나도 오늘에야 비로소 이영화를 봤다. 영화를 적게 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리고 종종 변태소
릴 들을 정도로 야한걸 밝히는 편이지만 이영화는 웬지 그저 그런 뻔한 에로물, '청춘'이나
'미인'류의 뭔가 든척하려 하지만 결국은 공허한 그런 영화 중 하나로 보여 보지 않고 있다
가 이영화 팬이 된 친구의 권유로 시간이나 때울겸 봤다. 그런데 웬걸.. 군데군데 거친 점은
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발견한 보석이었다. 열악한 제작여건하에서 배우들도, 감독도, 스텝
도 하나같이 진지한 열정으로 영화를 만든 흔적이 역력했고, 삼천포로 안빠지고 끝까지 성
적 마이너리티의 시각을 견지하려 노력한 몇안되는 한국영화의 하나였다. 특히 하리수는 단
연 빛났다.(물론 몸만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ㅡ.ㅡ) 일종의 자전적 이야기였을 이영화에서 보
여주는 그 눈빛의 처절함과 절실함은 보는이에게 마술을 걸어놓은 것처럼 꼼짝못하게 만드
는 힘이 있었다. 독특한 구성과 편집, 영상과 음악도 단순히 잔재주를 부린 차원을 넘어 영
화 자체에 완벽하게 융화되어 관객에 대한 호소력을 증폭시켰다. 감독이 김유민이던가? 차
기작이 기대된다. 물론 나왔던 배우들 모두의 차기작도 기대된다. 하리수는 그나마 좀 떴지
만 편의점 알바나 다큐맨역의 배우도 그냥 썩히기엔 아까운 유능한 인재들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몇가지.

1. 영화 초반부 편의점 알바가 매니저와 헤어진 직후 자신의 방에서 혼자 멍하니 거울을 보
는 장면. 거울 3개에서 그의 얼굴을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며 '내가 지금 뭐하는거
지?'하는 주인공의 공허한 심정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2. 아마 감독 자신의 자화상이라 여겨지는 다큐맨이 기성의 모럴 장벽을 돌파할 자신이 없
어 무력하고 쓸쓸하게 돌아서는 장면. 세명의 주인공 중 가장 주류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그
는 주류의 폭력에 분개하며 나머지 두 주인공을 도우려 하지만, 기존질서에 대한 그들의 반
항이 일정한 선을 넘어서자 결국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내가 이 캐릭터에 특히 공감을 많이 느꼈던 이유는 그의 입장이 내 입장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주류'관객들의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말없이 떠나는 그의 등뒤에
하리수가 고소하며 쏴갈긴 손총에는 한없는 야유가 담겨 있었고, 그것을 장난처럼 무기력하
게 수용할 수밖에 없던 다큐맨의 모습은 '그래, 난 이정도밖에 안되는 놈이야'하는 자조를
강렬하게 내뱉고 있었다. 이장면은 이영화를 보는 모든 주류관객들에 대한 정면질타인 셈이
고, 그것도 상당히 효과적인 정면질타인 셈이다. (혹시 강은교의 '사랑법'이란 시를 아시는
지? 이장면을 보면서 문득 그 시가 생각나던데)

3. 후반부, 미장원에서 하리수가 이발하는 도중 편의점 알바가 TV를 보다 흥분해서 집어던지는 장면. 이때 하리수가 돌아보며 씩 웃는다. 마치 '이제 너도 나처럼 되었구나. 이제 어찌해야할지 알지?'하고 묻는 것 같다. 이때까지 하리수와 알바는 같은 마이너리티인데도 불구하고 기존질서에 대처하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하리수는 성전환수술까지 하며 적극적이었던 데 반해, 알바는 수동적으로 늘 남성들에게 당하는 입장이기만 했다. 똑같이 도주하면서도, 언제나 하리수는 앞장서서 일을 저지르고 알바는 그저 거기 말려들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어쩌면 '트랜스젠더'라는 지위와 '여성'이라는 지위가 그런 차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 집단에 대해 기성사회가 길들이는 방식은 상이하다. 여성에 대해서는 순종을 강요하는 대신 그 존재를 인정하지만, 트랜스젠더(내지는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성차별에 근거한 권력질서 자체를 뿌리째 위협하는 장애물로 보아 아예 그 존재자체를 부정한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는 오랜 타성에 젖어 '빵에 감사하는 노예'처럼 살아가지만, 트랜스젠더는 타협의 여지가 없어 더욱 투쟁적이 되는 것이다.(물론 이는 사실을 엄청 단순화한 이야기이니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갈것) 그러나 양쪽모두 남성권력의 피해자란 점에서 기존질서에 저항해야할 당위성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영화에선 하리수는 그 당위성을 좀더 일찍 깨달은 캐릭터로, 알바는 극한상황에 가서야 그것을 뒤늦게 깨우친 캐릭터로(하긴 극한상황에 가보기 전까지는 저항이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쩝) 제시되는 것 같다. 실제로 이사건 이후로 마침내 알바도 '행동'을 개시, 더 이상 스스로를 억제한 채 고분고분 당하기만 하는 여성이기를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며 과거 매니저를 등쳐먹는다. 아무래도 이영화는 성혁명의 약한고리를 동성애자로 설정하는 것 같다.

(여기서 잠깐 사족 : 호모에는 두종류가 있다. 스스로 남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과,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끼면서 남성을 여성으로서 사랑하는 남성. 트랜스젠더는 후자에 가까운데 후자가 지배지향적인 남성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성해방이란 테마에 더욱 어울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자의 호모는 동성애 인권 자체로만 관심이 제한되고 성해방이란 주제와는 다소 거리를 둘 여지가 있으므로 '동성애자'란 주제를 성해방과 관련해서 다룰 경우는 이런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4. 마지막에 주인공이 전 매니저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박수까지 치고싶을 정도로 통쾌했다.
ㅋㅋㅋ

5. 마지막 장면의 충격적인 해프닝은 기발하긴 하지만, 웬지 잘나가다가 술에 물탄 듯 지나
친 멜로톤으로 나간 것 같아 좀 아쉽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착하지만 소심한 다큐맨은 감독
의 분신이라 생각된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나도 그중의 하나지만) 기득권에 속했다는 일종의 죄책감 내지는 부채의식 때문이겠지만 자신이 외면했던 사회적 마이너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건 일종의 자기정당화이기도 하다. 정말로 옳은 일을 하고 싶다면, 좀더 희망적인, 선동적인, 자신만만한, 건설적인 아님 적어도 도전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목소리를 못낸다. 왜냐고? 책임질 자신이 없으니까... 결국은 비겁하니까... 사내답지(!) 못하니까... 방금 한 말들은 사실은 필자 자신의 자조이다.
어쨌건 감독은 이런 영화를 통해 문제제기라도 했지만 난 뭔가...(쩝)

결론을 말한다면 이영화는 무척 괜찮은 영화이다. 물론 영화 나름대로 흠이 없는 것도 아니
지만 여기서 별로 그걸 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고, 무
엇보다도 그 미덕에 걸맞는 대우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꼭!!! 보라. 이런영화 안살리
면 어떤영화 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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