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의 영화 제작 연대기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흐름이 발견된다. 인간성에 숨어 있는 모순과 개인과 그를 둘러싼 사회 사이의 균열을 찾아내는 데 귀재인 이들 형제는 그 균열을 한 번은 잔인하고 비극적인 묘사로, 또 한 번은 엉뚱하고 유쾌한 희극적 묘사로 번갈아 다뤄왔다.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1984)’에서 꼬이고 꼬인 느와르 풍의 연쇄살인으로 관객의 심정 조여주더니,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에서는 미친 듯이 웃겨주고, 장중한 ‘밀러스 크로싱(1990)’에서는 다시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미쳐가는 세일즈맨의 무시무시함을 떨친 ‘바톤 핑크(1991)’에서 한 번 조여주고, 동그라미 아이디어 하나로 회장님이 되는 실업자 청년의 ‘허드서커 대리인(1995)’에서 한 번 풀어주고, 죄책감이 결여된 인간 군상을 발견한 당혹감의 ‘파고(1997)’에서 한 번 조여주고, 쭉 늘어진 몽상가 루저의 ‘위대한 레보스키(1998)’에서 또 한 번 풀어준다.
21세기의 작품 목록도 비슷해서, 2000년의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에서 풀어준 후, 2002년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로 조여주고, 다음 해 ‘참을 수 없는 사랑’의 스크루볼 코미디로 다시 풀어준다. 2004년의 ‘레이디 킬러’로는 마음 놓고 웃기도 울기도 어려운 경계를 선사하고, 좀 쉬었다가는 절망적으로 무시무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로 컴백, 다음 해에는 또 다시 멍청한 녀석들에 대한 조소로 가득 찬 ‘번애프터 리딩’을 내놓았다.
‘시리어스맨’은 그 뒤를 이었으니 흐름대로 예측하자면 심각한 비극적 묘사를 만날 타이밍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코엔 형제식 코미디로 일관한다. 물론 유약한 주인공이 겪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은 비극의 소재로 모자람이 없지만.
평생 잘 한 건 없어도 잘못은 하지 않고 살아온 성실한 물리학 교수 래리에게 갑자기 온갖 악재가 터져나온다. 아내는 이혼하자며 집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고, 아내의 뻔뻔스런 내연남은 그를 포옹하며 오히려 동정한다. 대마초나 피워대고 아버지 돈을 빼돌려 탕진하는 아들, 도박 혐의로 경찰에 잡혀오는 자폐증 동생, F학점을 취소해달라면서 돈봉투를 놓고 가놓고 오히려 교수를 협박하는 한국인 학생과 아버지,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이번 정교수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자꾸 제보가 오는데 하고 염장 지르는 상관, 미칠 것 같은 심정을 달래러 찾아간 랍비는 시간 없다고 상대도 안 해주거나, 엉뚱한 비유만 늘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