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빼고 다 괜찮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전적으로 트위터 때문이었다. 아직 초보라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팔로잉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유명인물 중 한명이 배우 박중훈이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 영화의 촬영 현장을 생중계하듯 소개했고, 트위터의 신청을 받아 시사회에 초대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홍보에 활용했다. 자연스럽게 트위터를 통해 개봉 이전부터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딱히 볼 생각은 별로 없었다. 스토리도 좀 뻔한 것 같고, 거기에 제목이 <내 깡패 같은 애인>이라니, 왜 이리 식상해. 그런데 시사회 이후 이 영화에 대한 호의적 감상평이 트위터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결국 내 마음도 돌려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삼류 건달에 관한 얘기다. 지방대 출신으로 다니다 직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달동네의 반지하로 이사 온 세진(정유미)은 첫날부터 자신에게 반말을 거침없이 쓰는 옆방 오동철(박중훈)과 자꾸 엮이게 된다. 묘한 인연으로 가까워진 둘은 가짜 애인이 되어 세진의 고향까지 동행하게 되는 관계가 된다. 한편, 동철이 속해있는 조직은 전직 경찰인 박반장(정인기)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조직에서 거의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삼류 건달의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대표적으로 <파이란>과 조금 느낌은 다르지만 <똥파리>.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오동철은 <파이란> 강재와 <똥파리> 상훈의 딱 중간 정도 캐릭터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
우선 이 영화의 장점으로는 오버하지 않는 코미디 감각을 들 수 있다. 분명 오버할만한 상황, 코미디로서 욕심을 부릴 만한 상황에서도 자제를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국 코미디 영화가 많은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오버’하는 감성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그러나 반대로 쉽게 타협하기 쉬운 지점이라는 걸 염두에 뒀을 때, 한국 코미디 영화로서 오버하지 않는다는 건 일단 인정해 줄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병원에서의 에피소드와 동철이 세진 아버지를 만나는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놀라운 코미디 감각을 대표하는 장면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첫 번째 장점과 결부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치열한 당대의 현실을 담아냈다고 해도 그것이 과잉 정서 내지는 오버하는 코미디에 기대었다면 현실감은 상당히 무뎌질 것이다. 물론 코미디 영화가 꼭 현실감을 동반해야 되는 건 아니다. 그저 화장실 유머로 치장된 처음부터 끝까지 막가는 코미디 영화도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문제는 한국 코미디 영화가 대부분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한국적 정서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내 웃기다가 꼭 마지막엔 감동을 주려는 태도, 그 때문에 야기된 무리한 이야기 전개야 말로 한국 코미디 영화가 코미디로서도, 드라마로서도 외면 받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사실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가장 놀랐던 건, 삼류 조폭 건달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에서 당대의 아픈 현실을 마주대하는 것이었다. 이는 주로 소위 ‘88만원 세대’인 세진의 고통스런 현실을 통해 전달된다. 누구보다 자신의 업무에 자신 있건만 그 어떤 면접관도 업무 능력에 대해선 궁금해 하지 않는 현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 등이 세밀하게 잘 그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극복하는 게 그저 출신대학에 관계없이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 회사 대표의 개인적 성향에 기대있다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본격 사회파 영화도 아닌 코미디 영화에 그런 것까지 바라긴 무리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남게 되는 건 주연을 맡은 박중훈과 정유미가 예상 외로 잘 어울린다는 점 때문이다. 나이라든가 경력이 전혀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둘이 같이 담긴 화면은 너무 자연스럽다. 아마도 둘이 가까워지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헤피엔딩을 바라는 관객의 마음을 쓰다듬듯 포근히 다가오는 엔딩 장면은 웃음과 안타까움 뒤의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건 다른 영화를 보러 홍대 롯데시네마에 갔더니 감독과 주연배우의 무대인사가 다음날로 예정된 공문이 붙어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볼까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남질 않아서 시간되는 김에 당일 봐야 겠다 싶어, 인근 신촌 아트레온으로 가서 바로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 보러 들어갔더니 바로 그곳에서 무대인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묘한 인연이.. 평소 트위터로 자주 봐서인지 이상하게 박중훈이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인 것처럼 친숙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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