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중 2주간의 휴가를 맞아 고향을 찾은 존은 봉사활동 중이던 여대생 사바나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떨어진 그들은 '편지'를 통해 서로 이어지게되나,
떨어진 거리만큼 그들 삶에 채워드는 수많은 변수같은 '일'들로 인해 그들은 같이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 영화 역시 고전적이다. <노트북>도 그렇지만, '니콜라스 스팍스'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고전적이다.
분위기부터, 사랑하는 방법, 그 사랑의 도구까지 클래식컬하다.
그래서, 요즘 핸드폰세대들은 누릴 수 없는 '기다림'과 '애타는 마음'을 더욱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사랑이야기'로만 점철됐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쟁'이라는 키워드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단순히 그들의 사랑의 거리를 멀리 갈라놓는 도구만이 아니었다.
영화의 몇개 키워드를 잡아보자면, '불량주화'ㅡ'전쟁'ㅡ'불안함'ㅡ'자폐증'ㅡ'사랑'이다.
이 영화가 단순한 사랑영화에서 끝나지않는 느낌이 여기서 온다.
이 다섯개의 키워드는 유기적으로 얽혀들면서, 그들의 사랑을 더욱 애타게하지만
'전쟁영화'적 성격과 더불어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소도구로도 쓰인다.
영화의 시작, 주인공 존은 전쟁 중 총에 맞으면서 총 맞은 자신을 '불량주화'에 비유한다.
부상입은 군인=미군의 불량주화.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불량주화는 바로 결함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중심에서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 대체재로써 바로 깨끗하고 올바른 주화가 그 자리를 메꾼다. 굳이 그가 아니어도 된다.
이러한 비유적 표현이 '전쟁'이라는 부분에서 군인의 역할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또한, 주인공과 아버지의 연결매개체가 바로 '불량주화'였다.
그들 부자(父子)가 이어질 수 있었던 존재는 바로 존의 '불량주화' 찾기덕분.
아들은 성장해서 사춘기를 겪고, 그 매개체의 이유를 잊어버리지만 아버지는 '불량주화'를 자기 자식마냥
챙기기에 여념없다. 그는 멀어져버린 아들과의 관계를 '불량주화'를 통해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폐증'적인 아버지와 여주인공 '사바나'의 옆집아이인 '앨런'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소통'을 잃어버리게되어 관계를 회피하는 증상이다.
'사바나'만이 그들에게 '사랑'을 통해 그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섯 개의 키워드는 묘하게도 이렇게 영화 속에서 서로서로를 연결시켜주는 유기적인 역할을 한다.
'소통'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아들, 편지로써 소통을 하지만 이유를 모른채 단절되어버리는 '존'과 '사바나'의 관계, 그 안에서 느끼는 '불안함'... '전쟁'과 '9.11테러'는 그러한 '불안함'을 사람들에게 더욱 가져다주고, 결국 '단절'이라는 외벽에 갖히고 만다.
'사랑이야기'에 그친 내용을 담아낼 수만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장애(障碍)적인 요소들로 인해
이 영화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흡사, 후반부는 전쟁영화를 보는 것처럼 많은 부분을
'전쟁'에 할애한, 최근 본 영화중에 <브라더스>라는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전쟁'으로 인한 파급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깊게 파고들 수 있는지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초콜릿><하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감성을 잘 다뤄냈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능력 덕분에,
이 뻔한 러브스토리로 끝날 수 있었던 영화도 감성적으로 살아났다.
그의 영화들이 전체적으로 잔잔한 감은 있지만, 여운과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자관객들분보다는 여자관객들에게 더 어필할만한 영화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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