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알려진 것처럼 1960년대 김기영 감독의 동명영화 "하녀"를 리메이크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 영화는 원작 "하녀"와도 달랐고 심지어는 "예고편"과도 달랐습니다.
"파격"을 내걸고 엄청나게 홍보를 해댔던 이 영화는 사실 그다지 파격적인 면이 없습니다.
오히려 원작 "하녀"에 비해서도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당시 그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었던 충격
에 비하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오히려 소소한 정도입니다.
이 영화는 역시 히로인인 전도연이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전도연 "은이"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행동. 게다가 너무 착하고 천진하기까지 하니 가끔은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기가 차게 황당했던 은이를 어느 순간부터 극 초반보다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는 시선, 은이를 해석하는 방식이 늙은 하녀인 병식처럼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녀는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하고 딴 마음이 없는데
처음에는 왜 계속 저럴까 생각하다보니 이해는 더 안가고 그래서 짜증나고 황당하지만
나중에는 "아, 은이는 원래 저런 여자지" 이런 생각에 오히려 착하고 꿍꿍이 없는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지는 단계에 이릅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원작 "하녀"와는 전혀 다른 영화라는 말을 들었기에 특별히 비교하면서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비교할 게 없습니다. 하녀가 여주인이 임신한 상황에서
주인집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와 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원작 "하녀" 속에 하녀는 유부남을 꼬신
팜므파탈에 가까운 여자로 표현되었다고 하면 오히려 은이는 백지처럼 순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은이의 성향 때문에 복수 장면을 담고 있는 결말마저 그녀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에로틱 서스펜서"라는 문구를 대놓고 사용하면서도 전혀 그러한 면이 없습니다.
대체 왜 스릴러 혹은 서스펜스 장르로 분리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파격
적인 치정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밀한 복수극도 아닙니다. 대체 "하녀"의 틀을 빌려가면서
까지 이런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어쨌든 하녀라는 설정이 주인집 남녀의
이중성을 드러내는데 일조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들은 우아한 척하면서 친절한 척하면서
은이를 길들이고 생각과 어긋나자 그녀를 배은망덕한 천민 취급을 합니다. 하지만 은이는 대학
교육을 받았던 적도 있고 본인 명의의 아파트도 있습니다. 특별히 가난함 때문에 그런 치욕
을 참을 처지가 아닙니다. 그녀가 견뎠던 이유는 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극 후반까지도
누구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사과할 필요도 없는 것에 사과합니다. 자신을 질책하는 해라와
그녀의 모친에게도 천진하게 질문합니다. 그걸 어떻게 다들 알고 계시냐고. 아, 정말이지
이 장면은 은이의 천진함의 방점을 찍는 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은이는 오히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녀가 착하기 때문입니다.
착한 그녀, 천진한 그녀로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가 있는 건지 상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늙은 하녀 병식은 참아넘기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오랜 세월 모든 굴욕을 견디며 아들을 검사로 만든 여인입니다. 그녀는
보고도 못본 척 진심은 아닐지언정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게 그녀가
현실을 헤쳐나가는 방법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현실을 견디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부당해도 참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도 참습니다. 순간의 모멸감을
꿀떡 삼키고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닌 더러워서 피하는 것, 참지못하면 나만 우스워지는
것...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이는 그러지 못합니다. 영화 내내 참을 필요도 없이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던 은이는 결국 밟히다 밟히다 꿈틀하게 됩니다.
은이가 조금만 더 일찍 복수에 돌입했다면 그나마 절반의 긴장감만이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특별히 에로틱한 면을 어필하고 있지도 않고 - 강렬하게 느껴지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 그렇다고 숨막힐듯한 반전이나 통쾌한 복수가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기대하고 들어온 관객은 내가 보려던 "하녀" 예고편으로 접한 "하녀"가 보고 있는 "하녀"와
전혀 다르다는 것에 황당해질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복수 장면은 CG의 난감함이 참...그랬습니다. 그런데 무척 은이답기는 했습니다.
이 영화 언론시사회 이후 영화 한줄평을 보면 대게 전도연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뿐이었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은이는 사실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를 못할 여자입니다.
전도연 스스로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 힘들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전도연의
은이는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고 그래서 이상하지만 이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싶은 정도로.
게다가 이날까지도 전도연이 섹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그녀는 참 섹시했습니다.
의외로 몸매가 너무 좋아서 놀랐습니다.
극장 가서 보세요. 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는 아닙니다. 차라리 홍보컨셉을 달리했다면 이 정도로
실망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예고편 카피 자체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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