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마이클 만 감독적일 거다라고 예상하고 봤는데, 제 예상보다는 덜 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항상 마이클 만 감독에서 두 남자가 주축이 되서 전개되는 영화인 경우 - <히트>나 <인사이더>, <콜래트럴> 같은 걸작들 - 두 인물 모두에게 동등하게 포커스를 맞춰왔다는 인상을 받아왔었습니다. 근데 이번 영화는 지나치게 딜린져 중심입니다. 아무리 영화가 딜린져에 대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를 쫒는 자인 퍼비스에게는 전혀 초점이 안 맞춰져있더군요. 아무리 영화가 딜린져에 대한 영화라고 해도, 두 인물이 함께 어우러져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냈어야했던 몇몇 장면들에 드라마적인 아쉬움이 좀 남더군요. 가령 딜린져하고 퍼비스가 감옥에서 대화를 나누는 짧은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자체가 길이에 비해서 에너지가 충만한 장면이었지만, 비슷한 성격의 장면 중에서 <히트>에서 빈센트와 맥컬리가 커피 숍에서 대화를 나누는 긴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장면을 생각하고 처음 봤을 때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2. 그러다 보니 영화의 성격도 <히트>와 같이 범죄자-경찰의 대립 구도로 진행되는 범죄 영화 같지도 않고, 오히려 딜린져의 행적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성실하게 따라가는 전기 영화나 연출 특성상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만들 때 중요한 건 캐스팅인데, 감독은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죠니 뎁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는 왠지 안 어울릴 거 같은데 이러고, 개봉하고 나서도 죠니 뎁의 연기는 좋았다 미스캐스팅이다 말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죠니 뎁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리스챤 베일의 비중이 약했던 게 좀 흠이라면 흠이지만 좋은 연기였습니다. 근데 <히트> 때처럼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연기 정말 대박이군... 이런 느낌이 여기에서는 별로 안 들더군요. 감독은 그냥 쓸데 없는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필요한 만큼, 평균적인 것만 그들에게서 뽑아낸 것 같습니다.
3. 마리온 꼬띨아르는 약간 아쉬웠습니다. 딜린져를 열심히 사랑하다가 결국 그 불같던 사랑이 끝나버리는 그런 역활입니다. 좋은 배우인데, 남성 중심의 연출에 능한 감독의 성격 상 그런건지, 로맨스 장면도 좀 애매했고, 그녀의 캐릭터도 좀 애매했던 것 같습니다.
4. 영화는 오히려 드라마보다는 스릴러 쪽으로 더 맘에 듭니다. 전체적인 극적 긴장감이 높은 건 결코 아닌데, 스릴 넘쳤던 장면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가짜 총 만들어서 탈출하는 장면이나, 유유하게 수사 본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 말입니다.
5. 시대 배경 재현에 정말 충실한 영화입니다. 실제로 총격전 벌였던 곳에서 총격전을 찍을 정도로 있었던 일을 최대한으로 충실하게, 디테일하게 재현해내는 감독의 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30년대 도시 풍경이나 미국 도시 전체의 모습, 차량, 건물, 경찰의 모습들, 그 경찰들에게 기어오르는 범죄자들... 정말 세심하게 보여주긴 했습니다. 근데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것은... 글쎄요... 꼭 그랬어야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현장감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재연이라는 의도 하에서 찍는 다큐멘터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로 인해 약간 난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재연만을 목적하는 하는 다큐멘터리에 비해서 카메라 워크나 영상이 좀 더 정교하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감독이 원했던 효과와 전혀 반대되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6. 총격전에 대해서도, 감독의 전작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듭니다. 총기 격발음이나 총격전의 리얼리티는 좋습니다. 근데 한 방에 딱 끝내는 그런 류가 아니라 간간이 짧게만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총격전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뭔가 나오는군 이러는 찰나에 끝내버립니다. 그런게 아닌 장면이 딱 하나 있었는데, 딜린져의 은신처를 급습하는 장면이죠. 여기에서는, 총격전 특유의 극적인 쾌감 같은 게 거의 없습니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 벌이는 총격전을 보면,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무언가의 리듬이나 극적인 형식 같은게 느껴졌는데, 여기에서는 긴장은 존재하지만 정교하게 구축되어있는 총격전에서 오는 긴장감보다는 덜 합니다. <히트>에서의 도심 총격전에서 느껴졌던 전문가적인 총질이랄까. 그런 게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해서 디테일하지 않다는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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