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뭐,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다 예상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예상을 빗겨가는 장면은 없냐고요? 단연컨대, 없습니다.>
1.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내용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는데 별 지장은 없습니다. 대중 영화답게 영화는 철저히 공식을 따릅니다. 새로운 걸 기대할 순 없어요. 영화가 짧은 만큼 군더더기 없이 제 갈 길을 묵묵히 가지만, 그 길은 엉성하고 예측 그대로입니다. 주인공인 페르세우스는 신과 인간 사이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인간 손에서 자라고, 하데스에 의해 자신을 길러 준 사람들이 죽게 되자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되고, 그는 그걸 부정하죠. 인간은 신을 원망하며 신들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고, 신들은 자신을 섬기지도 않고, 자신들이 보기에 개판인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고, 인간을 벌하는데 앞장 선 하데스는 공주를 재물로 바치면 다들 살려주겠다, 안 바치면 크라켄을 보내 너희들을 멸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죠. 그리고 하데스도 나름대로의 꿍꿍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요? 페르세우스와 다른 군인들은 크라켄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내 죽이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인정하고, 같이 갔던 군인들은 다 죽거나 자신을 희생하고, 결국 메두사를 죽여서, 그 자른 머리를 크라켄에게 보여줘서 크라켄은 돌로 변하고, 결국 그는 공주를 구해내고, 꿍꿍이를 부렸던 하데스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는 일종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뭐 이리 스포일러급 이야기를 주주장창 뿌려대냐고 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이러한 내용들은 영화 보기 전부터 충분히 짐작 가능한 내용입니다. 말했잖습니까? 시작은 그럴싸해도 결국 새로운 건 없다고요. 허술하고 익숙한 스토리에 대해 보는 이들은 항상 그 스토리보다 두 발자국은 더 앞서서 갈 수 있습니다.
2. 저런 스토리가 이런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건,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죠. 게다가 이 영화는 홍보대로 3D 영화 아닙니까? 게다가 아바타에서 봤던 것처럼 3D 효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고, 또 이 영화에서도 대단하겠지. 이런 생각은, 일찌감지 접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바타의 대성공 이후, 영화의 대세는 3D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야르로 개나 소나 다 3D로 만드는 시대가 온 듯 합니다.(심지어 블록버스터가 아닌 스텝 업도 3D랍니다. 게다가 올 해 월드컵을 3D로 중계하겠다고 한 곳도 있죠.) 오늘 아침에 3D로 본 타이탄은 아마도 아바타의 대성공에 힘입어 나도 근사하게 한 번 만들어봐야지 하고 3D 작업을 영화 중 하나죠(1월 말인가에 이걸 3D로 만들겠다고 갑자기 선언하고 개봉을 1주일 미뤘으니까요.) 그러나 모두가 아바타처럼 3D로 대박을 꿈꾸면서 2D에서 3D로 전환해서 결국 3D 영화로 개봉을 시킨다면, 그 영화가 2D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이에 대해 제임스 카메론 감독님의 말을 인용해서 “1~2달 동안 2D를 3D로 전환시킨다고 해서 그건 훌륭한 3D 영화가 결코 될 수 없으며, 그런 영화들은 오히려 3D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3. 다름이 아니라,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스토리나 서사에 대한 불만보다 더 크게 든 생각은 이걸 왜 3D로 했어야 하는 건가 였습니다.(이 질문에 대해 영화사 대표사가 입장료 3달러 더 받기 위함이다라고 말한다면 전 할 말 없습니다.) 3D 영화는 2D에 비해 화면의 선명도는 떨어지지만(2D보다 화면이 전체적으로 어둡습니다.) 그 대신에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입체감을 선사하는 건데, 2D의 선명함을 버리고 3D로 볼 정도로 이 영화의 3D 효과가 그렇게도 뛰어났는가? 분명하게 아니라는 거죠. 처음에 프롤로그 영상에서는 화면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3D 효과가 확실히 보여지는데, 그 후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3D 효과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결말에서도, 이 영화에서의 3D 효과는 생각보다 덜합니다. 오히려 디지털 2D로 보는 게 돈도 아끼고, 훨씬 더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4. 더 큰 문제는 이 영화가 예고편에서 약속한 만큼의 많은 볼거리를 보여주진 않는다는 겁니다. 중반부의 사막에서 전갈과 싸우는 장면이든, 메두사가 나오는 장면이든, 크라켄이 나오는 장면이든, 이 영화의 볼거리는 이미 홍보사가 영화 홍보하면서 70% 이상 보여주었습니다.(국내에만 공개가 안 된 거지, 야후 미국 사이트 가면 메두사가 등장하는 장면의 75%에 달하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 있습니다.) 마지막의 크라켄 장면만 입이 한 번 벌어지는 수준이지, 이 영화의 볼거리는 블록버스터로서는 합량 미달이라는 느낌이 듭니다.(저는 맨날 블록버스터에서 예상보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지친다고 투덜거렸는데, 이건 예상보다 볼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감독이 루이스 리터리어입니다. 비록 그가 이 영화의 원작에 광팬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만들고 싶어했고, 장면 장면 하나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해도, 루이스 리터리어의 전작(<트랜스포터 2>나 <인크레더블 헐크>)처럼, 기술력도 좋고 액션이 그렇게까지 적은 건 아니다만(그래도 위에 말 한 것처럼 이 영화의 볼거리는 예고편을 통해 보고 짐작 가능한 게 과반수 이상입니다.) 액션의 쾌감도 생각만큼 크진 않습니다. 액션 장면이 화려하긴 하더라도 그 장면에서 생각 만큼의 파괴력이 느껴지진 않아요. 오히려 액션보다도 이 영화는 몇몇 장면의 분위기만 좋아요. 가령 메두사를 죽이러 지하 세계로 가는 장면이나 메두사가 살고 있는 던전 같은 곳 처럼요.
5. 이 영화의 캐스팅은, 이런 영화에서 이런 캐스팅이 가능해 라는 소리가 나옵니다.(인크레더블 헐크 때도 그랬죠. 이런 무식한 영화에 에드워드 노튼과 팀 로스라니...) 샘 워싱턴은 터미네이터 4나 아바타에서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 여기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목 할 만한게 리암 니슨과 랄프 파인즈가 나온다는 겁니다. 두 훌륭한 배우가 영화에 나오지만, 여기에서는 낭비되는 느낌이 듭니다. 뭐, 연기는 확실히 좋지만, 이 정도 수준의 배역과 연기를 보여주기에, 리암 니슨과 랄프 파인즈를 기용하는 것은 두 배우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가 짧다 보니, 좋은 인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안습인 분량을 차지하고 계신 분들도 몇몇 있습니다.
6. 영화의 이렇게 많은 아쉬움의 근본 원인은, 100분 안으로 모든 이야기를 해낼려고 시도했다는 거 그 자체입니다. 짧은 러닝 타임안에 쑤셔 넣어야 겠다는 강박관념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미 좋은 영화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짧은 러닝타임이 다 말아먹은 영화를 많이 봐왔습니다. 2006년의 <포세이돈>, 2007년의 <나는 전설이다>, 2008년의 <지구가 멈추는 날> 등등... 정말 많긴 합니다. 이 영화도, 못해도 20분만 길었다면, 더 좋은 장면을 보여주고, 더 디테일하게 서사를 전개시켜 나갈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정말 크게 듭니다. 근데, 영화를 이렇게 짧게 만들었으면서 감독은 3부작으로 이걸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답니다. 3부작으로 만들 꺼니까 1편은 짧아도 좋다. 그래서 영화를 짧게 만들었다는 겁니까? 최소한 짧게 만든다고 해도, 넣어야 할 요소는 전부 다 충분하게 넣어야 할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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