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와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등의 수많은 화제작을 만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 드디어 나왔다.
소재의 파격성과 더불어 배두나의 출연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문제작 '공기인형'이 드디어 한국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넀다.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유명 감독의 작품인 만큼 기대가 되었으며 과연 고레아다 감독이 공기인형을 모티브로 영화를 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했다.
1.일본의 어두운 현실
영화가 시작되고 직면하게 되는 일본의 현실은 매우 어둡다.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범죄자는 미디어에서 노래처럼 흘러나오고 있으며 히키코모리는 폭식증에 걸린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고 남자(노조미의 주인)는 실연의 상처때문에 인형에 집착한 채 프리터(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고 젊은 파견사원의 등장으로 찬밥신세가 된 노처녀 여직원은 분노에 찌들어 고통받고 있으며 가정이 붕괴된 비디오 가게 주인은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현실을 대변하듯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화면의 색조는 '인간의 고독'을 상징하는 블루톤이다. 노조미가 움직일때에는 부드럽고 상쾌하게 느껴지는 푸른 색조가 다른 군상을 비출때는 매우 우울한 느낌으로 우리앞에 다가온다.
2.노조미 인 원더랜드
영화가 시작되면서 가장 의아해했던 점은 노조미가 인형인데 아무도 인형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였다. 길거리에서도 경찰서에서도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그려지는 비디오 가게에서도 노조미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인간으로 인식되었다. 아무도 그녀가 인형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며 서로가 서로를 기파하다보니 어느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립되어 있는 상태를 고레에다 감독은 노조미의 정체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3.세기말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갈 무렵에 쏟아져나왔던 수많은 묵시록적인 무비들처럼 이 영화는 일본의 현상황을 세기말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희망은 사라지고 슬픔과 고독만이 덩그러니 남은 마천루의 사막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른들은 공기인형에 집착하고 있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젊은 계층에게 무시되고 있으며 아이들은 피규어와 오타쿠 문화에 집착하고 어른들처럼 버림받지 않기 위해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스스로 거부한 채 커다란 마음의 벽을 만들어 히키코모리와 오타쿠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속 그려지고 있는 어떤 캐릭터도 완전한 가족이 거의 나오지 않으며 대분의 캐릭터가 자신의 트라우마가 자신의 마음을 갈아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왠지 슬프고 어두우며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채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가벼고 명랑한 느낌으로 시작한 영화의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둡고 끝이 없는 긴 터널의 느낌으로 변색되어 관객을 짓누른다.
4,버블 & 공기
처음에 '공기인형'이라는 제목을 들었을때 문득 떠오른 건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였다. '노조미의 몸속에 공기가 주입될 때 너무 많은 공기가 들어가서 노조미가 터져버리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이 나는 장면과 '한꺼번에 공기를 너무 많이 빼서 노조미가 죽어버리면 어쩌나'하는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일본경제가 버블이 꺼지기 전까지의 일본사회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었다.
아무도 이 버블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사상누각처럼 소멸되버릴 줄은 미쳐 몰랐다. 느릿느릿 스며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공기인형의 공기처럼 버블의 소멸은 일본을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게 헀으면 생존을 위해 파견사원과 가정의 붕괴, 프리터를 양산해냈다.
그리고 사회라는 생물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산해 낸 고통은 사회의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가서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마음의 벽을 쌓아서 사회를 더욱 암울하고 괴롭게 만들었다. 한순간 빠져나간 공기처럼 버블의 붕괴는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만들어낸 것이다.
5.Sacrifice
거리의 노인이 사람들의 몸이 비었다고 했을때 노조미는 자신과 같은 인형이 세상에 있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그 말의 진의는 암울한 일본 사회에서 살기 위해 마음을 버린 사람들의 상황을 의미한다.여기에 노인은 '생명은 빈곳을 채워야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인과 노조미의 대화와 지속적인 만남은 노조미에게 마음이 생긴 일이 범상치 않은 일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노조미는 여러 로드무비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만든 사람을 찾아가고 공기인형 주인에게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며 점차 마음을 잃어버리고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괴로워한다.
자신의 순진무구함으로 남자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마음을 잃어버린 다른 타인들처럼 유리되고 소외되어 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의 마지막 남은 숨결을 등장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남은 인생을 마친다. 노조미는 이 영화의 메시아이며 순교자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마음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자신이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절망게 된다.
하지만 노조미는 자신의 희생시킴으로써 원죄(욕망과 욕망으로 빚어진 현실)에서 인간을 구원해낸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동화적인 순수함이 아닌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사회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과 미시적이며 진지한 성찰이 내재되어있는 보기드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피적으로는 다분히 동화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에 기독교적인 구원과 원죄 그리고 희생을 곁들인 고레에다 감독의 최신작은 매우 흥미로웠으며 다음 작품에는 과연 감독이 어떤 메세지를 담을지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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