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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ot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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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2 오후 6:1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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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있다. 남이 슬프면 자기가 더 아프고, 남이 기쁘면 자기가 더 흐뭇한 사람. 다른 것보다 외로운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 외로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참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좋은 사람’을 소개 시켜줄 때까지 차마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결국 행복한 커플의 닮은꼴 웃음을 봐야지만 비로소 손 털고 안심하며 돌아서는 사람.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의 커플매니저 효진(신은경 분)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 자기 실속은 못 차린다. 효진도 예외는 아니라서 남들 짝 찾아주느라 정작 자기는 솔로다. 그런데 폭식 친구들도, 선배 언니도, 남자친구도, 회사 동료도 그런 줄 모른다. 그러니 효진의 발이 춥지 않겠는가? 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 영화를 ‘발’로 볼 수도 있다. 효진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에도, 효진과 현수가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지는 데에도 ‘발’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자에게 발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무엇이다. 요즘에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남 앞에서 자신의 발을 함부로 드러내는 여자는 많지 않다. 그러면 어디 한 번 ‘발’로 볼까?
발이 춥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애인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효진은 1년 전에 애인과 헤어졌다. 자신은 주말의 명화나, 비디오를 보면서 가끔 ‘사용하지 않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오는 번호로 전화를 걸기도 하며 외로움을 꾹꾹 누른다. 그래서 효진의 속마음을 닮은 효진의 발이 춥고 허전하다. 효진은 겨울도 아닌데 크고 푹신한 털 달린 실내화를 신고 잔다. 따뜻해 보이는 커다란 털신을 신고 잠든 효진의 모습에서 남 모르는 효진의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약할 것 같은 효진의 발만큼이나 효진의 마음도 여리지 않을까?
발에 자주 쥐가 난다 효진은 주로 앉을 때 다리를 꼬고 앉는다. 다리가 짧은 것도 아닌데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설 때면 자주 쥐가 난다. 쥐 난 다리를 두드리는 효진에게 현수(정준호 분)는 코에 침을 바를 것을 가르쳐준다. 효진은 정말 그렇게 침을 바른다. 외로운 효진에게 ‘좋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효진은 선뜻 나서지 못한다. 절뚝거리면서 힘들게 걷는 모습이나,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 폭식 친구들에게 들려나갈 때 대롱대롱 달린 효진의 발은 ‘일어서기’와 ‘걷기’와 ‘나아가기’에 서툰 효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요지부동인, 아니 요지부동인 체 하는 효진의 마음을 말이다.
친구 준의 발 발로 말하는 건 효진만이 아니다. 효진의 친구(남자친구란 말이 도리어 어색한) 준(공형진 분)은 거의 벗은 발 차림이다. 쓸쓸한 효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도 준의 손이 아니라 발이다. 그것은 그 한 장면으로 단박에 준의 성격을,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씬이다. 준은 그 발로 효진을 놀리고 위로한다. 벗은 마음 그대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공형진이 엄지발가락을 치켜 세울 때 내 마음도 우뚝 솟는 것 같았다. 발 재간은 월드컵 축구대표 선수들만 부리는 게 아닌가 보다.
발을 헛딛는다 자주 쥐가 나고 잘 걷지도 못하는 효진이 현수와 함께 걷는다. 무심한 현수는 성큼성큼 걸어가고 발이 부실한 효진은 낑낑대며 뒤쫓아 걷는다. 그러다 그만 효진이 맨홀에 빠진다. 맨홀(Manhole)이라… 요지부동인 체 하던 효진이 그만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니라고? 두 사람은 그 일로 처음 포옹(뭐 그다지 로맨틱하지는 않지만)을 하는데도 말인가?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포옹에서 풀려난 효진이 현수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자랑 걸을 때는 혼자 앞서 걷지 마시고 호흡을 맞추셔서..” 그렇다. 보폭을 맞추며 걷는 것, 사랑의 걸음마는 그렇게 시작된다.
발이 자동차 바퀴에 깔린다 술 취한 효진의 발이 자동차 바퀴에 깔린다. 현수의 옛 애인 킹카녀 때문에, 자꾸만 현수에게로 향하는 마음 때문에 어지럽고 무겁던 효진의 마음도 그렇게 깔리지 않았을까? 자기 마음에 자기가 깔린 꼴이다. 그러나 그 사고 덕에 둘은 더 가까워진다. <소나기>나 <우나기>처럼 다친 사람을 보살피며 두 사람의 사랑도 깊어진다. 붕대를 감느라 효진은 자신의 맨발을 현수에게 고스란히 보이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에 서툰 두 사람에게 병원은 좋은 핑계이다. 효진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현수는 부축의 몸짓으로 효진의 어깨를 감싸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쓰다듬어 준다.
두 개의 가방, 두 켤레의 신발 이쯤에서 우리는 효진이 두 개의 가방을 메고 다닌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가방 속에 든 또 한 켤레의 신발을 기억하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효진이 구두 대신 운동화를 꺼내어 바꿔 신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것을 구두가 지시하는 ‘커플매니저’에서 운동화가 가리키는 ‘29세 여성 김효진’으로 바뀌는 ‘터닝포인트’라고 본다. 그렇다면 효진도 한껏 용기를 낸 것이다. 그래서 현수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인과 어머니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구할 거예요?”
전선을 밟고 넘어지다 이벤트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영화 내내 그래왔지만 이벤트에서, 아니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도 발의 활약이 있다. 효진이 옛 애인을 피해 숨다가 그만 젖은 전선을 밟고 넘어진다. 대형 얼음동상이 넘어지고 좀체 말을 듣지 않는 효진의 발이 바둥거린다. 조금 길다 싶게 잡은 이 장면은, 그러나 관객의 안타까운 한숨과 탄성을 불러내며 영화 속으로 몰입 시킨다. 아마 이 지점에서 감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발이 없다 사랑에 감전된 수백 쌍의 남녀가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물론 효진과 현수도 머뭇 머뭇 손을 잡는다. 그러나 카메라는 더 이상 효진의 발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만큼 ‘발’로 영화를 봤으니 이제 그쯤은 알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효진의 발걸음이 경쾌할 것이며, 손을 잡았으니 발도 맞추어 걸으리란 것쯤은 말이다.
뱀발 잘 만든 장르영화다. ‘발’은 이 영화 속에 숨어 있는 보석들 가운데 고작 하나의 사금파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에도 흠도 있고 티도 있다. 그러나 옥에 티다. 티보다는 옥이 더 빛난다. 시나리오도 탄탄하고, 감독의 연출도 빼어나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킬킬거리고 웃었고 끝났을 때 마음 속으로 손뼉을 쳤다. 아니다. 발뼉을 쳤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도 로맨틱 코메디 영화를 보았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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