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작품도 실망을 안긴적 없는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이 새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인빅터스>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용서를 통한 화해'입니다. 자신을 30년 가까이 감옥에 가둔 백인들을 향한 만델라는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극심했던 흑인과 백인간에 감정의 골을 해소하는 발판을 만들고 새롭게 하나된 국가를 이룩하기위한 '국민통합'을 외치던 그 시절. 남아공의 실제 역사 속 실화를 영화화한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소통에 관해 말하는 연장선으로 <밀리언달라 베이비>가 남녀간, <그랜 토리노>에선 소수민족과 주류를 논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인종간의 소통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각본없는 드라마인 '스포츠'를 통해 온 국민이 하나되는 감동을 쉽게 만끽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을 좀 더 공감하기 위해선 역사적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요.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부에 위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7세기 중엽에 네델란드의 백인이 유입되기 시작해 1815년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원주민인 니그로 흑인의 차별이 시작됩니다. 전체 인구의 80% 정도나 되는 가난한 흑인들을 약 10% 정도의 소수 백인들이 지배하기 위해 아파르트 헤이트 (Apart heid)라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제도로 무력과 경제 그리고 정치를 장악하면서 그들을 탄압했습니다. 마치 많은 범죄자를 소수의 간수들이 다루기 위해서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들 신변의 위협을 지키며 그들에게 공포를 안겨 대항하려는 생각조차 갖지 못하게 하려는 그들의 차별은 세계적으로 그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흑인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며 앞장 선 정신적인 지도자 만델라는 막강한 백인들의 무력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시작해 많은 역경을 거친 뒤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이 영화에 시작과 맞물립니다.
흑인들은 이제야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만델라를 통해 백인들에게 복수를 꿈꾸지만 오히려 만델라는 그들을 복수하기 보다는 용서를 통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가기를 제안합니다. 아직 핵심 권력을 쥐고 있는 백인들을 자극하기 보다는 연민과 관대함을 보이며 백인과 동반자 입장으로 새나라를 만들자는 그의 생각을 실현하기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들 능력 이상의 '영감'이 필요했고 그 때 선택한 만델라의 비장에 카드가 바로 '1995년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럭비 월드컵'에서의 우승이었습니다. 유니폼과 엠블렘이 예전 백인들의 우뤌주의를 상징했던 '스프링복스'팀을 '프로티아스'로 바꾸기 보다 그들을 포옹하고 함께 가자는 무언의 메세지를 온 국민들의 가슴에 심어주려 한 것이지요. 비록 매번 패전을 맞본 최약체팀이었지만 주장 프랑소와(멧 데이먼)의 리드하에 그들은 자신의 능력 이상을 해 내며 이룰 수 없어 보인 기적을 만들어 내고야맙니다.
만델라가 직접 자신을 연기할 배우는 모건 프리먼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그를 보는 듯한 연기를 보이며 이번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른 모건 프리먼. 럭비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강도높은 몸 만들기를 통해 현실감을 높이며 멧 데이먼도 남우조연상을 기대하고 있지요 그러나 가장 압권인 결승전의 경기 장면은 보호장비도 없는 육체가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격렬한 스포츠의 모습 속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현장감을 살려 내고 있기에 경기가 끝나도 감동의 여운은 관중의 함성처럼 가슴에 남겨집니다.
감옥에 수감되어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했던 만델라에게 좌절을 느낄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주었던 윌리엄 너네스트 헨리의 시 제목이기도 한 인빅터스 (Invictus : 정복되지 않는)를 제목으로 한 이번 작품은 만델라를 영웅으로 묘사하거나 럭비팀이 대회를 앞두고 <록키>와 같이 훈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신 힘겨운 과정속에서 어떻게 백인들과 흑인들이 하나로 되어가는지를 정말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런 감동 뒤에 우리와 일부 유사한 역사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와는 조금 다른 결과를 경험한 우리에 대해 돌아보게 되더군요.
2002년 월드컵을 통해 4강 신화를 이루며 온 국민을 하나되게 하는 기적을 일구었지만 만델라처럼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정치적 탄압을 받은 뒤 대통령에 당선되셨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충청, 대구, 전라로 구분되는 극심한 지역주의 타파를 원했던 국민들의 염원이 서로의 용서를 통해 온 국민이 화해를 이뤄냈나를 생각해보면서 조금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한것처럼 우리도 남쪽에서의 화합뿐만 아니라 북쪽과도 하나될 그날이 분명히 오겠지요. 그때는 결말에서 우승 트로피를 백인과 흑인이 맞잡은 것처럼 서로 손을 함께 맞잡고 희망에 찬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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