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매력... ★★☆
로렌스 탈봇(베니치오 델 토로)은 아버지(앤서니 홉킨스)와의 갈등 때문에 오래전 고향을 떠나 배우로 활동하던 중 형이 실종됐다는 형 약혼녀 그웬(에밀리 블런트)의 애절한 편지 때문에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다. 고향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형의 시체를 확인하게 된 로렌스는 그곳에 남아 살인자를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형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숲에서 늑대의 공격을 받고는 늑대인간이 된 그는 마을 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런던에 있는 유명 의사에게 보내 치료하려 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와 밤중에 기도를 올리는 이조차도.... 늑대가 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왠지 장중하다. 이 영화를 보리라 마음먹은 건 전철역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 때문이었다. 베네치오 델 토로, 안소니 홉킨스, 휴고 위빙.. 거기에 떠오르는 신예 에밀리 블런트까지. 세상에!!! 같이 서 있던 동료에게 “이 영화 출연진 하나 만으론 죽이네”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울프맨>은 이 엄청난 배우들이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 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울프맨>은 1941년도 동명 원작의 리메이크작이다. 내가 원작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울프맨>은 많은 늑대인간 관련 영화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안전하게 걸어감으로써 수많은 기시감을 안겨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성공이라는 단어 대신에 실패라는 단어를 넣어도 동일하다. 왜냐면 확실히 이런 안전한 행보는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가 가능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실패 쪽에 가깝다.
전형적인 이야기 구성, 밋밋한 상황전개, 주요 인물들의 이해되지 않는 감정선 및 동선, 식상한 결말 등 <울프맨>의 단점은 여기저기에서 관람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거기에 처음에도 말했지만, 대단한 배우들을 활용하지 못한 평이한 연출은 괜스레 ‘내가 낚였나’ 싶어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뛰어난 연기는 뛰어난 작품’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배우의 연기조차도 감독의 연출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는 극단적 정의마저 내려질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조금 우스운 얘기를 하나 하자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왜 언제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가가 항상 궁금했었던 류승완 감독이 <밀양> 촬영 당시 현장을 찾아가 그 비밀(?)을 탐구했다고 한다. 며칠 지켜본 류승완 감독이 내린 결론은.... ‘뛰어난 연기가 나올 때까지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재촬영한다’ 였다나...)
그럼에도 <울프맨>의 어두움이라든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1940년대)을 1890년대로 바꿈으로서 가능했다고 본다.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영국은 그야말로 중세시대의 광기와 새롭게 도래하는 시대의 이성이 부딪치는 경계의 시대였으며, 늑대인간이란 존재는 어쩌면 사라져가는 광기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깐 배경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음산하고 괴기스럽고 스산하다.(로렌스가 집에 도착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거기에 영화 초반부터 화면을 물들이는 잔인한 늑대인간의 습격 장면 - 머리가 댕겅 잘려져 나가고, 사람들의 팔다리가 날아다니는 - 이라든가 늑대인간이 런던의 건물 위를 뛰어 도망가는 장면은 대단히 고어적이고 화끈하며 인상적이다. 나름 고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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