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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 말고 전설의 고향 울프맨
jimmani 2010-02-13 오후 3:57:31 7275   [3]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전설이 설화나 신화와 다른 대표적인 점은 구체적인 장소와 시기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배경에는 언제나 꽤 정확한 시기나 장소가 기록되어 있어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이야기를 흔히 전설이라 일컫는다. 그래서 여름이면 방영되던 납량특선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도 이야기 말미에 늘 '이것은 @@년 경 경북 @@ 지방에서 전해내려 온 이야기로...'라는 식의 구절로 해설을 풀어나가지 않던가. 이런 식의 전설은 그것이 괴담스러운 내용일 경우 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언급함으로써 공포감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전설의 고향'은 역시 우리나라 곳곳에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를 보면 특정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기이한 이야기들를 도처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울프맨>이 바로 이런 이야기다.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연기 좀 한다는 굵직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띄었지만 무언가 장엄한 고전 서사극을 만들어낼 것만 같았던 이 영화는 사실 딱 할리우드판 '전설의 고향'이라 할 만한 영화였다. (비하하는 뜻은 절대 아니고, 기능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들의 어린 시절을 공포에 떨게 했던 괴담의 실체를 스크린으로 그럴 듯 하게 옮겨 놓은 그런 것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2백년 전인 듯한 영국 런던. 연극배우인 로렌스 탈보트(베니치오 델 토로)는 어느날 형 벤의 약혼녀 그웬 컨리프(에밀리 블런트)로부터 형의 실종에 대한 편지를 받는다. 함께 형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아버지 존(안소니 홉킨스)이 있는 집으로 향한 그는 형이 이미 갈기갈기 찢긴 시신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미 그곳에서 그런 식으로 3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보름달만 뜨면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인다는 괴담이 떠돌게 된다. 로렌스는 형의 죽음의 원인이라도 규명하기 위해 나서지만 아버지 존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뿐이다. 그렇게 보름달이 뜨는 밤 바깥으로 나간 로렌스는 말로만 듣던 그 괴물, 늑대인간의 습격을 받게 되고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그웬의 보살핌 덕분인지 그는 빠른 속도로 부상에서 회복하지만, 이상하게 그는 예전보다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한 힘을 얻게 됨을 느낀다. 이윽고, 다름아닌 그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늑대인간 이야기는 서양 호러에서 숱하게 보아 온 소재임에도 이 영화를 쉬이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베니치오 델 토로, 안소니 홉킨스, 에밀리 블런트, 휴고 위빙 등 모두가 연기 꽤 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기에 이 영화가 그렇고 그런 얕은 호러물만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이들은 영화의 무게를 받쳐주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럴 수 밖에.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주인공이라기보다 '보름달이 뜨면 나타난다'는 그 흔한 늑대인간의 이미지를 위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베니치오 델 토로가 그렇게 이 영화를 제작까지 겸해가면서 열의를 보였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1941년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이 영화 제작에 착수했는데, 그만큼 그가 주안점을 둔 것은 늑대인간의 새로운 해석보다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전적인 늑대인간의 모습을 현대에 다시 원형 그대로 되살려내는 것이었던 듯 하다.

 

그런 목표에 어느 정도 부응하게 영화는 늑대인간 묘사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늑대인간이 벌이는 잔혹한 살인행각, 기괴한 변신과정, 특유의 날렵함과 파워로 펼치는 묵직한 액션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영화는 흔히 아련한 괴담 속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는 다소 조악한 늑대인간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인지 사실적인 묘사를 주저하지 않는다. 늑대인간이 도처에서 벌이는 활약(?)은 여느 고어 호러물 부럽지 않은 잔혹함을 보여주는데, 때론 다소 과장된 묘사가 공포감 이전에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변신과정 또한 기묘하게 꺾이는 관절과 각기춤을 추듯 그로테스크하게 뒤들리는 몸의 형상 등 꽤 세심한 묘사를 보여준다. 영국 런던의 침침하면서도 고전적인 분위기에 잔혹하고 기괴한 이미지가 어우러지면서 10여년 전에 나온 팀 버튼 감독의 <슬리피 할로우>처럼 오랜만에 만나는 서양식 고전 호러의 느낌을 전해준다. 다만 영화가 중간중간 잔혹한 이미지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충격 효과는 곧잘 사용하지만 고전 호러 특유의 서늘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강조해 호러의 분위기에 충실하기 하기보다는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지는 늑대인간의 과격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액션에 치중하면서 어드벤처물의 색깔도 덧입히려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감독이 이전부터 어드벤처물을 곧잘 만들어 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매 영화마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연기를 펼쳐 온 베니치오 델 토로는 좀처럼 나오지 않던 대규모 상업영화에 출연했는데(본인이 제작도 겸하긴 했지만),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매우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상대적으로 평이한 연기에 머물렀다. 원래 이런 캐릭터는 인간일 때는 지극히 차분하다가 변신하면 극도로 난폭해지는 캐릭터라, 실제 배우의 모습이 등장할 때는 연기력을 잘 뽐낼 수가 없는데, 그 같은 중량감 있는 연기파라도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는 <인크레더블 헐크>에 나왔던 에드워드 노튼에게도 적용된다.) 물론 특유의 퀭한 눈매와 큰 몸집은 영화 속 늑대인간 캐릭터와 훌륭한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오랜만에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안소니 홉킨스는 마치 20년 전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키는(물론 그 파괴력은 많이 미치지 못하지만) 이중적인 캐릭터를 아무렇지 않은 듯 섬뜩하게 풀어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에밀리 블런트는 이런 고전 호러물에 으레 등장하기 마련인 아름답고 고결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부족함 없이 표현했으며,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이미지가 언뜻 겹치는 강렬한 수사본능을 지닌 애버라인 경감 역을 무게 있게 표현했다.

 

이 영화는 욕심이 별로 없는 듯 하다. 가장 크게 생각한 목표는 앞서 얘기했듯 그 옛날 이야기로만 듣거나 우스꽝스러운 고전영화로만 만나던 괴담을 현대 기술에 힘입어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이었을 테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괴물에 대한 과감하고 자세한 묘사, 망설임 없는 수위의 장면들 덕분에 어느 정도 형상화 된 듯 하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은 결국 영화가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굵직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거대 자본이 투입된 느낌을 주는데도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할리우드의 영화 기술에 힘입어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영화판 '전설의 고향'을 본 느낌이랄까. '전설의 고향'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나,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분명 미국 사이트에선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125분이라 되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무슨 이유인지 102분으로 알려져 있는데(설마 20분이 넘는 분량이 편집된 것인가), 암튼 시대극치고 짧은 편인 러닝타임 속에 영화는 그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다. 늑대인간의 변신과 살인행각은 강렬하게 나타나 있으나, 이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 비극적인 개인사 등이 주는 감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늑대인간의 전설을 둘러싼 탈보트 가문의 비극적인 역사가 드러나긴 하나, '호러 어드벤처'적 특성에 주력하는 영화는 인물들 간의 첨예한 갈등이 켜켜이 쌓이다가 폭발하는 식이 아니라, 늑대인간의 활동을 실컷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배우들의 대사로 진실을 툭 내던지는 식으로 그 내력을 드러낸다. 그래서 관객은 그 내력을 그저 알게 되는 것일 뿐, 그것의 비극성을 깊이 깨닫지는 못한다.

 

 

현대 호러가 아닌 이런 식의 고전 호러에서는 누구나 외형적 공포 이면에 숨은 깊은 서사를 기대하게 마련인데, <울프맨>은 늑대인간의 실체를 묘사하는 데에 힘을 많이 써 버린 나머지 서사의 깊이에는 힘을 별로 쓰지 못한 듯 했다. 늑대인간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저 설명되기만 할 뿐,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드라마 '전설의 고향'도 잘 만든 에피소드는 결말에 가서 가슴 아픈 사연을 설득력 있게 끄집어냄으로써 감동을 선사했는데, <울프맨>은 이 부분에서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고전 호러물로서 매혹적인 이야기나 기묘한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울프맨>은 아쉽게도 이 부분에서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다. 이야기는 설득보다 설명에 의존하고, 분위기는 스산하고 기묘한 분위기보다는 <반 헬싱>류의 약간 으스스한 어드벤처에 가깝다. 반대로 말로만 듣던 늑대인간의 우스꽝스런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면 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늑대인간의 눈에 뵈는 게 없는 활약상에 적잖은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듯 싶다. 제목이 '늑대인간'이라 해도 관객들은 그를 둘러싼 보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울프맨>은 늑대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만 욕심을 낸 듯 싶다.

 


(총 5명 참여)
jhekyh
캬악~   
2010-02-25 14:24
tmvivigirl
잘봤습니다. !   
2010-02-25 01:26
okjin20
그래도 기대되는 영화임.
나름 재밌었음   
2010-02-24 15:45
c19860429
그렇군요..   
2010-02-24 14:33
hinakiku
오..글 잘보았습니다 - 맨아래 글에 공감합니다. 울프맨은 늑대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만 욕심낸듯 싶다. ㅎㅎ   
2010-02-24 11:55
khj1205
와~ 글 잘 쓰시네요~ 잘 읽었어요~   
2010-02-24 09:23
rlfxodud88
잼잇음   
2010-02-24 09:01
shtk6
많이 봐오던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2010-02-23 20:55
ryoko804
재밌을까 ~~~~   
2010-02-23 16:50
e7811
잘 읽고 가요   
2010-02-23 14:58
lifeyo
외국판 전설의 고향이란 생각이 제목보고 드네요~   
2010-02-23 01:48
smc1220
감사요   
2010-02-22 17:19
freebook2902
보고갑니다.   
2010-02-22 11:41
wjswoghd
봐야겠네요   
2010-02-21 18:52
kimshbb
기대되는데요   
2010-02-21 16:17
lminjjang
여기 저기 널부러 지는 신체의 일부//   
2010-02-20 14:36
rexiod
@evil06 / 잔인해서 19입니다.   
2010-02-19 23:44
j8434
저두 꼭 봐야겠네요`   
2010-02-19 09:38
tmvivigirl
괜찮나요?   
2010-02-19 03:16
evil06
흠 근데 이건 야해서 19센가요 잔인해서 19센가요..   
2010-02-19 00:33
k620105
재미나겠어요   
2010-02-18 15:46
satde
살짝 기대했다가~ 별로 였던 영화~   
2010-02-18 15:21
thdtnsal
좋은영화에요   
2010-02-18 12:23
szin68
남자배우 때문에 기대했는데...   
2010-02-18 00:14
dukeyoko
항상 누누히 얘?기하지만 마케팅에 낚이지 말란말이다~
영화 본질을 파악해야지 광고 30초에 홀리지말지어다~
영화는 영화일뿐 상업적으로 올리지도 당하지도 말자~   
2010-02-17 23:25
verite1004
그렇군요!   
2010-02-17 19:32
naredfoxx
전설의고향 ㅋㅋ   
2010-02-15 12:50
kim31634
이거 잼있을꺼 같애 ㅋ   
2010-02-14 23:37
snc1228y
감사   
2010-02-14 22:01
shelby8318
그런가요?   
2010-02-14 21:08
onesik
잘 읽었습니다   
2010-02-14 13:18
seon2000
잘봤어요   
2010-02-1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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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맨(2010, The Wolfman)
제작사 : Universal Pictures / 배급사 : UPI 코리아
수입사 : UPI 코리아 / 공식홈페이지 : http://wolfman2010.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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