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지 않게 적당히 가슴을 울리는 판타지 멜로... ★★★
헤이스케(고바야시 카오루)의 아내 나오코와 딸 모나미(히로스에 로쿄)가 탄 고속버스가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가파른 산길에서 절벽으로 추락하고 중태에 빠진 나오코가 사망하기 직전 영혼이 모나미에게 옮기는 ‘빙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영혼은 아내지만 육신은 딸인 모나미와의 동거는 아슬아슬하게 진행되고, 모나미가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할수록 모나미에 대한 헤이스케의 질투는 갈수록 심해지고 이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초자연적 현상인 ‘빙의’를 소재로 한 <비밀>은 일본 영화와 판타지 멜로 장르가 얼마나 적절한 조합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사례라고 할만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영화화한 <비밀>은 버스 사고로 사망한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 빙의된 채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동거한다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적당한 무게감과 유머 감각으로 가볍게 터치하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랄 수 있다.
지금에 와서야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인지 심드렁해지긴 했지만, 개봉 당시(2002년)만 하더라도 소재의 파격성과 함께 히로스에 료코의 매력은 많은 남성들이 <비밀>을 보도록 극장 앞으로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교묘히 순화시킨 설정은 확실히 영화 관람에 따르는 부담감을 경감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외화시켜 낸 것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다. 어머니의 영혼이 깃든 여린 여고생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낸 히로스에 료코의 순수한 매력은 그저 그의 모습이 스크린에 담긴 것만으로도 화면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든 건 아버지인 헤이스케 역을 맡은 고바야시 카오루의 호연에 힘입은 바 크다. 자칫 매우 민감하고 거부감이 일지도 모를 딸과의 동침이라든가 질투 등의 혼란스런 감정을 약간은 코믹하게 버무림으로써 당시 일본 아카데미상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계속 우연한 상황이 겹치고 딱히 감정을 주고받는 에피소드 없이 졸음운전으로 아내를 죽게 한 운전사의 아들과 나오코가 결혼하는 등의 설정은 ‘가족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나름 영화의 주제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왠지 사족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비록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문제점이긴 하지만 남성 판타지의 실현이라는 과도한 남성 중심적 시선도 눈에 좀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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