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의 베트남출신 트란 안 홍감독의 이번
영화는 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배우들의 캐스팅과 함께 연신 이슈가
되어 왔다. 그의 전작 영화들을 돌이켜 본다면 결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나 잔인함과 가혹한 그로테스크적 장면이 넘쳐나는 스릴러를
연상할수 없는 이 영화의 알맹이는 사실 비대중적 내용의 결합체이다
불편하고 무거운 주제와 함께 비상식적인 그로테스크함의 무게를 실은
육체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내용 스토리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LA에서 거대한 제약회사의 사장으로
부터 자신의 아들의 소재파악과 그를 데려와달라는 의뢰를 받은 전직
형사 클라인(조쉬 하트넷)이 그의 아들인 시타오(기무라 타쿠야)의
소재를 파악해 데려오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3년전 필리핀 민다나
오에서 고아원 운영을 위한 돈을 송금해 달라는 요구에 대한 이야기의
정보와 시타오의 사진을 제공하며 모든 지원을 약속하는 사장의 의뢰
가 어째서 현재 현직 형사도 아닌 클라인을 택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일체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의 초점은 그런 곳에 있지 않다. 이 영화는
인간의 고통과 구원의 의미에 대해 불편하고 무거운 부분을 긁어내려고
얘기하려는 것이다. 민다나오에서 시타오가 고아원 운영자금이 부족해
지자 손을 벌린 대부호의 부하들에게 총으로 사살된듯 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른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 클라인은 홍콩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시타오는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도
되는 냥 타인의 고통을 구원하고 자신이 고통받는 존재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나선다. 그의 대사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듯 그는 행동으로
보여줄뿐 변변한 대사 몇마디 없다. 그리고 시타오를 쫓게 되는 다른
한명의 인물 수동포(이병헌)가 등장한다. 냉혹하고 잔인해 보이며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그런 그의 곁에는 릴리(트란 누 엔케)라는
여자가 있다. 릴리는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구원이자 탈출구같은 유일
한 존재이다. 여기서 곂쳐지는 부분이 생긴다. 한 사건을 계기로
릴리는 시타오에게 발견되어 속박당하고, 홍콩에 온 클라인은
안면있는 형사 멩지(여문락)의 협력을 구하게 된다. 이 영화의
초점을 보자면 클라인이 몇년전 연쇄살인범을 쫓으면서 동화되는
의식과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죽인 기억과 정신적인 트라우마
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구원을 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경험하지만 비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타인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짊어진채 살아가는 시타오, 냉혹한 암흑가의
보스이자 타인에게 잔인한 고통을 줄수있지만 릴리라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구원의 매개체가 상실되자 불안감에 시타오를 찾아
나서는 수동포 이 세가지에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통은
세 남자에게 존재하며 그 구원의 출구또한 세 남자마다 각자
틀린 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고통을 심도있게
다루려는 듯 보여지는 영상들속에 보여지는 난해함을 이해하는
불편함은 대중적인 영화와는 관계없는 일종의 인디영화라고
보는편이 차라리 마음편할것이다. 시타오가 릴리를 속박하며
마약의 중독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려는 부분과 릴리가 그런
시타오의 마음에 동화된듯 자신의 연인 수동포에게 돌아갔다가
시타오에게 돌아오는 부분은 릴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암시한것 같다. 릴리에게 있어서 수동포역시
자신을 구원해주는 유일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질수 있었는데
그건 고통으로의 근본적인 구원이 아니었고 시타오가 그런
구원의 행위를 함으로써 릴리는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릴리의 행동에 수동포의 자신의 구원자이자
안식처로 느끼는 릴리를 자신의 곂으로 돌리기 위해서
시타오에게 고통을 선물한다. 그런 고통속에서 시타오는
정곡을 찔러 자신의 구원자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수동포
에게 "두려워 하지 말아요" "당신을 용서할께요" 라는
대사를 던진다. 자신의 구원의 대상을 다시 찾아가면서
잃어버릴까 두려운 수동포의 고통을 끌어안는 구원의 대사
를 던지는 시타오, 거기에 반응하는 수동포의 눈물과
그가 클라인에게 시타오가 있는 장소를 가르쳐 준것은
분명 시타오에게 구원을 받은듯한 느낌을 일말이나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표현되는 가장 큰 고통의 핵심체는 클라인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가 고통받는 장면의 부분은 수동포와 시타오에
비해 비중이 크고 지루함이 묻어날 정도로 과대한 부피
로 다뤄주고 있다. 아마 그런 트라우마적인 면이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이라는 면을 대변할려고 하는 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적어도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수있는 그런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다. 무거운면에서 의미
있고 불편하고 보이기 싫은면을 들어내는 음지의 양식을
꺼내어 들춰보려하는 가학적인면이 강하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 영화전체적인 구도가 사도마조히즘의 궁극적인
결정체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가학적인 피해를 즐기는
감독의 불편한 쾌감에 맞장구쳐서 그 고통의 쾌락에 동참
할수 있는 관객들이 얼마나 있을까? 특히 본인도 이 영화의
쾌락에 동참하고자 한것이 아니다. 너무 깊이 파고들면
아무생각없이 보는 슬랩스틱코미디 영화보다 재미없다.
고로 이 불편한 주제의식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내키지
않았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