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가 나올 땐 흥겹다.. ★★★
아카데미 작품상을 노리고 있다는 뮤지컬 영화 <나인>엔 두 개의 원작이 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는 뮤지컬 <나인>이 있고, 그 뮤지컬의 원작인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8과 1/2>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두 작품 모두 본 적이 없어, 원작과의 비교는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며, 그저 뮤지컬 영화 <나인>에 대한 직접적인 감상평만이 가능할 것이다.(평론가들은 대체로 원작과 비교해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우선 영화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이탈리아의 유명 감독인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새로운 영화의 제작 발표회 도중 잠적하고 만다. 사실 그는 각본을 써놓기는커녕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전혀 결정하지 못한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어디에 가든 그의 정체는 금세 탄로 나고, 그가 있는 한적한 휴양지로 정부 칼라(페넬로페 크루즈), 아내 루이사(마리온 코티아르), 미모의 기자 스테파니(케이트 허드슨) 등이 모이면서 곤란한 상황에 봉착한다. 거기에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의상 담당 릴리(주디 덴치), 어린 시절 동네 창녀였던 사라기나(스테이시 퍼거슨), 엄마(소피아 로렌)의 환영을 마주 대하게 되고, 스튜디오에 와선 자신의 로망인 여배우 클라우디아(니콜 키드먼)와 엮이게 된다.
대충의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우선 <나인>의 최대 강점이라면 화려한 캐스팅을 꼽을 수 있다. 데뷔작인 뮤지컬 <시카고>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롭 마샬 감독의 새로운 작품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소피아 로렌, 니콜 키드먼, 마리온 코티아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의 케이트 허드슨, 거기에 블랙 아이드 피스의 보컬 퍼기까지 출연한다니 이런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한 번에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거기에 최소한 <나인>은 뮤지컬 영화가 주는 기본적인 즐거움을 배반하지는 않는다. 롭 마셜 감독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극이 진행되는 공간과 노래와 춤이 진행되는 공간이 분리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다른 뮤지컬 영화에서 저택의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인물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면, 롭 마셜 감독은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장면과 그 인물이 춤과 노래를 하는 장면을 별도의 무대로 구분해 진행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별도의 무대를 이용한다는 건 어쨌거나 좀 더 화려해지고 웅장해질 여지가 있는 것이고, 판타지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나인>은 춤과 노래가 진행되는 순간만큼은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자극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즐거움을 꼽자면, 이건 남자에게 주로 해당되는 이야기일 텐데, 하나의 남성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명의 여성들이 주는 기본적인 구도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렇다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대단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남성의 주위에 현모양처 스타일의 루이사, 애처로워 보이는 섹시 스타일의 칼라, 화끈한 스테파니, 화려한 여신 스타일의 클라우디아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원하고 유혹하고 있으니, 이런 무릉도원이 어디 있겠는가. 남성들이라면 이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이런 여러 장점들과 마리온 코티아르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그 많은 여배우 중에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마음에 남아 있는 여배우는 아마도 마리온 코티아르일 것이다) <나인>의 손을 번쩍 들어주기에 주저되는 건 흥겨운 춤과 노래가 스토리와 단절되어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화려한 쇼 무대에 출연한 댄서들의 춤과 노래를 감상한 느낌과 비슷하다. 그러니깐 귀도 앞에 등장해 여성들이 펼치는 화려한 쇼가 대체 귀도의 결여된 창작 욕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영화 <나인>이 페넬로페 크루즈, 케이트 허드슨, 니콜 키드먼, 마리온 코티아르의 춤과 노래를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도덕교과서를 연상시키는 무난한 수준의 결말도 따분하고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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