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 길고 장황한 글입니다. 결말에 대한 암시도 조금 들어가 있는거 같구요...
5년 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제일 처음으로 존경했던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케이블 TV에서 <에이리언 2>를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제대로 압도당해 처음으로 영화의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갔고, 같은 해에 <터미네이터 1~2>를 보면서 `이 사람 영화는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트루 라이즈>는 킬링 타임용으로도 요즘에도 가끔씩 보는 영화고, <타이타닉>에서도 많이 늘어지고 너무 신파조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타이타닉을 통해서 카메론 감독은 상업적으로도 큰 대접을 받았고 작품성 면으로도 아카데미에서 크게 인정받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는 약간 과장된(?) 듯한 말을 하고 나서 12년만에 드디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신작 <아바타>를 들고 다시끔 찾아왔습니다. 거의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한 2년 넘게 기다렸고(그니까 대략 고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8월 달에 3D로 15분 영상을 보고 난 후 고통스러운 4달을 보낸 후, 드디어 눈으로 확인하는데 성공했습니다.(개봉날에 보려다가 시험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일주일 늦게 끝나는 바람에...ㅠㅠ) 그리고 결론적으로, 2년의 기다림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나서 그 엄청난 결과물 때문에, 아이맥스에서 나오면서 전 그야말로 정신줄이 나가버렸습니다.(글 쓰고 있는 지금도 온전한 제정신은 아닌 거 같아요.)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2154년, 지구인들은 엄청나게 큰 돈이 되고, 또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된 판옵티콘을 케내기 위해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정확히 기억은 안나네요.) 판도라 행성으로 가게 됩니다. 판옵티콘을 케내는 과정에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나비족과의 마찰이 생기고 되고 회사에서는 쿼리치 대령이 이끌고 있는 용병들을 고용해 폭력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주인공인 제이크는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용병으로서, 죽은 형을 대신해서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바타는 나비족과 인간의 DNA를 조합해서 나비족을 조정하는, 일종의 원격 시스템 같은 건데, 용병들과는 달리 그레이스 박사를 필두로 한 판도라 행성을 연구하고 있는 평화적인 과학자 집단이 이를 이용하고 있죠. 아무튼, 제이크는 이를 통해 판도라 행성에서 자유롭게 움직 일 수 있게 됩니다. 어느 날 제이크가 숲 속에서 위험에 처하게 됐을때 나비족의 여전사이자 부족장의 딸인 네이티리가 구해주게 되고, 이를 통해 제이크는 나비 족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나비족들과 함께 어울리고 전사로 훈련받고 신뢰를 쌓게 되면서 그는 그 세계에 동화되어 점점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 나비족과 용병들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 네이티리 -
스토리는 지극히 간단하고 고전적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시도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보기 전부터 예상했던 것과 거의 95% 이상 일치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전개됩니다. 기본적인 설정은 1990년에 아카데미를 휩쓸어버린 <늑대와 춤을>을 먼 미래 배경의 SF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라스트 사무라이>와 <미션> 역시 보신 분들이라면 쉽게 연상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 밑바탕에 깔린 세계관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시키고, 조금이게나마 매트릭스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제 제임스 카메론의 스토리가 새로운 적이 있었나요? 그는 항상 잘 알려진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변주해내는 능력이 정말 뛰어난 감독입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거의 새롭게 느껴질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여타의 블록버스터들 - 스토리 없이 발로 쓴 듯한 각본을 가지고 무개념적으로 퍼붓는 블록버스터나, 엄청난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나치게 익숙한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늘어뜨리고 나열시키는 블록버스터들 - 과는 달리 제임스 카메론 영화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감독은 뚝심있고 야심차게 전개해 나가는 이러한 이야기가 익숙하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이 이야기의 힘이 약하거나, 이야기 자체가 부실하거나 깊이없는 것은 아니며, 이를 통해 특수효과와 영화 전체가 완전히 살아나기 때문입니다.(대부분의 블록버스터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특수효과와 스토리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거의 완벽하게 활용한 영화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번 영화 역시 카메론 감독의 전작들과 다를 바 없이, 영화 속에 이야기가 완벽하게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분명한 연출력의 승리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들이 살아남아 영화의 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이 환경 속에서 감독은 그야말로 물 오른 영상의 극치를 선사합니다. 처음에 판도라 행성을 가는 장면부터 그야말로 넋을 잃게 만든 후, 감독은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인 판도라를 만들어놓고 보는 이들을 이 세계의 깊숙한 곳까지 인도합니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과정은 전기 감전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더군요. 그리고 이 세계에 빠져든 이상, 감독은 나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다른 블록버스터들에서 많은 문제가 되었던 한계 호용 체감의 법칙(초중반에 많이 퍼붓다 보니 후반부에 가서는 대단한 CG가 등장해도 심드렁해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을 적용시킬 코딱지만한 틈새도 보이지 않습니다.
- 할렐루야 산 -
이 영화의 CG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정교합니다. 감독이 만들어낸 판도라라는 행성은 너무나도 실제 같고 정교해서,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정말 존재하고 우리 곁에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합니다. 할렐루야 산을 지나갈 때는 정말 입에서 할렐루야라는 소리가 나왔고, 이크란을 타고 실제로 날아다니는 느낌도 들고, 흙이나 폭탄 파편, 풀 조각까지 실제로 튀기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같이 본 사람 중 한 명이 끝나고 `우리가 지금 본 게 현실이 아니라 영화가 맞는거야?`라고 물어봤을 정도로 이 영화의 최첨단 CG는, 어느 평론가의 한 줄 평처럼 귀신이 봐도 쌀 수준입니다.
이 영화의 최첨단 CG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코 나비족입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나오고 나서 이 정도 기술력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카메론 감독이 90년대에 만들려고 했다가도 못 만든 이유가 이 나비족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기술력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은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력을 동원해서 나비족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는데, 골룸 만큼이나 실제 같은 나비족들을 때거지로 만들어낸 감독의 기술적 능력은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정교해서 보는 내내, 나비족과 판도라는 CG야 라는 사실을 세뇌시키며 봤어야만 했죠.
이러한 요소들 떄문에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이 영화는 전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이 영화는 많은 걸 담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 나비 족에 대한 이야기, 인간이 나비 족이 되어 그들과 동화되어가는 이야기와 그로 인해 변화되는 모습, 경이로운 배경을 보여주는 판도라, 실사 같은 나비족, 그리고 엄청난 후반부의 액션까지 말입니다.
위에서 카메론 감독의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그닥 많지 않다고 했는데, 전작들과는 다르게 감독은 이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 결코 가볍게만은 볼 수 없는 주제의식을 넣고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보여지는 것은 서양 문명의 침략의 역사입니다. 용병들이 나비족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은 고대 문명이 침략하는 과정과 흡사하며, 후반부의 폭격 역시 베트남전을 연상시키게 합니다.(보신 분들이라면 지옥의 묵시록의 초반부에 나오는 헬기로 해변가의 배트남 마을을 폭격하는 장면을 떠올리실 겁니다.) 이러한 침략의 역사가 여기서도 반복이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걸 뒤집어버립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처럼 자연과의 동화와 공존을 주장하고 자연친화적인 사상을 집어넣습니다.(이 외에도 진중한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 같은데, 화면에 눈이 팔려서 그런 걸 생각 할 겨를이 별로 없다는 건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 인간에 대해 분노까지 느끼게 하는 참혹한 폭격 장면 -
이런 침략의 역사 속에서 환경친화적인 세계관을 집어넣으면서, 이 영화는 인간을 그야말로 적대시하게 여겨지는 존재로 그려넣습니다. 폭격 장면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점을 넘어서서 폭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결과로 이루어 진 행위로 인간의 잔혹성과 그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하고, 영화의 이러한 시각 때문에 마지막에 가면 환호하는 수준에 이릅니다. 인간의 욕심과 그로 인한 파멸을 그려내면서도, 역설적이고 이상하게도 이 영화 전체에서 우리는 환경친화, 생태보전적 가치관과 동등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휴머니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주제 의식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거구요.
결론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카메론 감독이 친 정확한 만루 홈런입니다. 어느 하나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은 점이 없습니다. 탄탄하고 견고한 스토리에서 익숙함보다는 독창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면 이 영화는 최고의 블록버스터인 다크 나이트를 압도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 이 영화는 오히려 더 최상급의 특수 효과를 자랑할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암튼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올 해 트랜스포머 2나 2012를 집에서 해결하신, 아니면 해결할 예정인 분들이라도 이 영화는 아무 말 할 것 없이 무조건 극장가서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집에서 캠버전으로 보시는 분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내가 왜 그랬던거지라는 엄청난 고난과 자책감 속에 빠져들어갈 겁니다. 블루레이가 나와도 극장에서와 같은 느낌을 느끼긴 힘들 겁니다) 예상했던대로 올 해의 베스트 영화 중 한 편이고(올 해 나온 영화 중 5번째로 만점입니다), 21세기 최고의 영화의 자격은 줄 수 없더라도 지금까지 경험하지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최고의 영화적 경험이라는 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영상 혁명을 읊조리며 홍보를 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을 머리 속에서 완전히 분해시켜버립니다.(실제로 이 영화보고 반지의 제왕 3편과 다크 나이트를 제외한 블록버스터들은 제 머리 속에서 90% 이상 증발해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전율의 영상 혁명이며, 결코 집에서는 누릴 수 없는, 큰 스크린으로, 3D로 즐겨야 할, 정점에 도달한 최고급 블록버스터들 중 하나로 다크 나이트와 함께 블록버스터계의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영화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블록버스터 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아 앞으로 3D 산업이 물오른 듯이 성장해 나갈 것이고, 앞으로 근 몇 년 간, 이런 경험 하기 힘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라 감히 장담해 봅니다.
p.s 가급적 3D 아이맥스로 보실 걸 완전 강추합니다.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이 2D로 전에 한 번 보고 3D 아이맥스로 봤는데, 2D로 봤을 때에는 `CG하나는 대단하구나...`라고 느끼는 데 비해 3D 아이맥스는 `저게 CG라니... 이건 완전 현실이자나!!!`라고 느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