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에 감동받은 소녀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
전편 <트와일라잇>에서 인간과 흡혈귀라는 종의 장벽을 넘어 사랑에 빠진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 나이를 먹는 게 결코 기쁘지 않은 벨라가 생일선물을 뜯다 생긴 상처로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에드워드는 벨라의 안위를 위해 냉정한 이별의 말을 남기고 떠난다. 에드워드가 떠난 후 좀비처럼 지내던 벨라는 오랜 친구 제이콥(테일러 로트너)을 만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면서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간다. 제이콥은 흡혈귀로부터 인간을 수호하는 늑대인간 ‘퀼렛족’의 일원으로 벨라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중 벨라는 자신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에드워드의 환영을 나타난다는 사실에 일부러 무모한 행동을 거듭하게 되고, 이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뉴문>의 미국 시사회 장면을 영상과 사진으로 보게 되었다. 로버트 패틴슨과 테일러 로트너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미국의 10대 소녀들. 이 소녀들의 파워는 많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뉴문>이 개봉 첫날 흥행기록을 수립하는 등의 원천으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트와일라잇> 개봉 당시만 하더라도 로버트 패틴슨에 대한, 아니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대한 열광은 순전히 미국만의 문화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뉴문> 상영관에서 목도한 건 이제 대한민국도 그 자장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객석의 점유율이 엄청 올라갔다. 토요일 조조. <트와일라잇>을 볼 때도 토요일 조조였다. 텅텅비었던 <트와일라잇>과는 다르게 <뉴문>은 조조였음에도 맨 앞의 일부 좌석을 제외하곤 거의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 영화 초반, 로버트 패틴슨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화면에 담기자, 객석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여성들의 신음소리(?). “어머 어머 어머” 속으로 좀 웃긴 했지만, 이건 단순히 장난이 아니었다. 영화가 끝난 후 남성들의 푸념과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 회유, 환호의 목소리로 마치 객석은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뉴문>에 열광하는 한국 여성들의 심리는 어쩌면 한국 청춘 드라마에 대한 반응과 동일한 지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은 뱀파이어,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내왔던 친구는 늑대인간인데, 둘 모두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여자주인공에 빠져 있다. 거기에 한 명은 근육질의 남성적 매력이 그득하고, 다른 한 명은 훤칠한 외모에 신사의 매력이 그득. 그리고 결국 한 명만을 사랑했으면서도 다른 한 명도 놓치지 않으려 적당히 자기 주위에 붙잡아 두고 있는 여성의 스킬도 비슷하다. 이건 걸 소위 어장관리라고 하든가.
한국 드라마가 그런 것처럼 <뉴문> 역시 딱히 내러티브를 따진다든가 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허접하기도 하고, 유치찬란하기도 하다. 물론 이건 거의 그대로 원작의 힘(?)이다. 사실 영화 <뉴문>은 영화적 편집이 무색하리만치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그런데 아마 소설을 영화로 옮기기 위해 가장 고심했던 지점은 소설에선 에드워드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초반, 벨라에게 이별을 고한 후 거의 마지막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로버트 패틴슨이 나오지 않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과연 소녀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리스 웨이츠 감독이 선택한 건 벨라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들리는 환청(원작소설)을 로버트 패틴슨의 모습이 등장하는 환영으로 바꾼 것이고, 이 것은 벨라가 자신의 심정을 앨리스(애슐리 그린)에게 이메일로 계속 알린다는 설정(원작엔 없음)과 함께 유일하게 소설의 영화화를 위해 손을 댄 지점이다.
그러니깐 주로는 남성들이 보며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영화 속 무수한 장면과 대사들 역시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이다. 소설과 영화를 다 본 입장에서 말하라면 그나마 영화가 좀 낫다. 소설은 구구절절 돌아버릴 것 같은 간지러운 대사의 연속과 아이들의 징징거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의 참을성이 대단하다는 사실에 놀랄 정도였으니깐. 그런 심정이면서 굳이 왜 소설과 영화를 봤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저 처음 호기심에 <트와일라잇> 소설과 영화를 본 죄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관성처럼 봤을 뿐이다.
원작소설의 저자인 스테프니 메이어가 평생 단 한 편의 뱀파이어 소설이라든가 영화를 안 봤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와 더불어 스테프니 메이어가 몇 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히 소녀적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적 IT 문화와도 일정정도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이라는 건 대충 짐작 간다.(IT와 거리가 멀다고 느낀 건 영화의 디카와는 달리 원작 소설에선 벨라의 생일선물이 필카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난다) 영화에서 처음 벨라가 깨어날 때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이 옆에 놓여 있었고, 학생들은 흑백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눈물짓는다. 소설에선 더욱 직접적이다. 벨라는 자신의 처지를 줄리엣에 비교하면서 고민을 거듭한다. 솔직히 연인이 죽었다는 데 한 번 찾아와보지도 않고 무작정 죽는다고 이태리로 떠나는 게 이해되는가? 이렇게 보면 소설이나 영화 <뉴문>은 그저 <로미오와 줄리엣>에 푹 빠져버린 한 소녀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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