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야말로 달의 어두운 면...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때는 지구의 근미래. 화석 연료가 고갈된 인류는 달에서 청정에너지를 채취,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3년의 계약을 맺고 컴퓨터 거티(목소리 케빈 스페이지)와 달기지 사랑(SARANG)에서 에너지를 채취하고 있는 샘 벨(샘 록웰)은 아내 테스와 딸 이브와의 재회를 꿈꾸며 혼자만의 고독한 생활을 헤쳐 나간다. 드디어 2주 후면 지구로 돌아가게 된 샘은 극심한 두통과 함께 몸 여기저기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순찰을 돌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 기지 안에서 깨어난 샘은 사고를 당했던 그 자리에 자신이 여전히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두 명의 샘은 힘을 모아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인간 한 명과 로봇이 이끌어가는 <더 문>의 초반부는 확실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두 명의 샘이 등장하면서 부터는 <블레이드 러너>라든가 <아일랜드>가 연상된다. 두 영화만이 아니라 <더 문>에는 많은 SF 영화들에서 차용한 듯한 장면들이나 설정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니깐 <더 문>이 대단히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재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법으로 조립한다면 그 결과물은 얼마든지 창조적일 수 있으며, <더 문>은 그것의 확실한 증명사례가 될 것이다.
<더 문>은 여러 SF 선배 영화들로부터 여러 설정들을 빌려 왔지만, 결코 그것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며, 고루한 장르적 클리셰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표적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시키는 샘과 거티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순간은 HAL이 입모양만으로 두 명의 우주인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며, 이후 컴퓨터의 반란을 모티브로 삼은 많은 SF영화들이 만들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문>을 보는 관객으로서도 컴퓨터의 감시와 반란에 대한 기대(?)는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결국 영화는 그런 기대를 살짝 비켜가며, 그래서인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거티가 표현하는 이모티콘마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두 명의 샘도 일반적인 SF 영화에서의 설정을 비껴간다. <아일랜드>,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들이 인간과 클론(복제인간)의 대립을 주요한 구도로 삼았으며,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클론인지를 두고 격렬한 대결이 펼쳐졌다면, <더 문>의 샘들(?)은 서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달기지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 서로 협력하게 된다. 물론 거대 기업에 의해 절대적 착취관계에 있는 달기지 노동자인 둘 모두는 클론이다.
이렇듯 <더 문>은 SF 장르로서의 성취와 사회성(노동 착취)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점은 <디스트릭트 9>의 호평과 동일한 지점에 서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문>은 영화가 그리고 있는 절대적인 고독감과 외로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흔한 액션 장면 하나 없는 SF영화 <더 문>의 쓸쓸한 달 풍경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고독하고 외롭다. 3년 동안 혼자 고독을 곱씹었던 샘 벨이 자신과 동일한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샘 벨을 만났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지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거기에 적절한 지점에서 흐르는 잔잔한 음악은 고독과 외로움을 더욱 깊게 만든다.
엘렌 페이지와 패트릭 윌슨 주연의 <하드 캔디>, 애슐리 주드와 마이클 셰넌 주연의 <버그>,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 주연의 <추적> 등의 영화는 최소한의 공간, 최소한의 인원,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다. <더 문> 역시 마찬가지다. 꿈이나 회상 장면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더 문>은 샘 록웰 혼자 출연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영화의 배경도 달기지 내부 및 달 표면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문>과 위에 거론한 영화들은 한정된 공간, 최소한의 등장인물만 가지고도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연기, 좋은 연출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주목할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샘 록웰의 열연은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두 명의 샘은 동일한 기억과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지만, 동일한 인간(!)은 아니다. 그 차이는 경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한 명의 샘은 3년 동안 혼자서 외롭게 에너지 채취 작업을 수행해 왔으며, 또 한 명의 샘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이다. 아마 3년 전에 처음 달 기지에 온 샘도 지금보다는 거칠고 감정적이었을 것이다. 두 명의 샘이 보여주는 미묘한 차이는 샘 록웰의 연기로 인해 현실성을 얻는다. 이에 덧붙여 영화가 주는 확실한 메시지는 클론=복제인간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복제인간도 사랑하고 고민하며, 때리면 아프고 고통을 느낀다. 그 어느 누가 이런 자명한 사실을 부정하겠는가.
※ 영화 속 달기지 이름이 한글로 사랑(SARANG)이고 두 번 정도 “안녕히 계세요”라는 우리말이 들린다. 던칸 존스 감독은 달기지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며 한국이 IT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고 몇 십 년 후에는 한국이 우주 산업을 주도한다는 게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아 한미합작 달 기지를 구상했다고 한다. 거기에 감독의 애인이 한국인이라나.
※ 참고로 던칸 존스 감독은 데이빗 보위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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