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라고 해 봐야 우리 나라 국민들에겐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샘 롹웰이 전부이고 케빈 스페이시가 출연한다지만 로보트인 '거티'에 목소리로만 등장할 뿐, 모니터와 상상 속에서나 보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출연 배우로만 보면 조금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거기에 연출을 맡은 분도 신예감독인 던컨 존스라는 인지도도 높지 않은 감독이고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닥 제작비도 들지 않아 보이는 영화인데 최고의 영화라고 하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투자 대비 결과치로만 본다면 충분히 그렇게 불릴만한 작품입니다.
우리에게 달은 고전동화에서부터 토끼가 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하는 친숙한 존재이지요. 그런 친숙한 공간을 던컨 존스는 인류의 새로운 에너지 공간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가고 싶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의 의미가 내포된 비밀의 공간으로 설정합니다. 대체 그곳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알려진 비밀 못지않게 또 다른 비밀이 인간의 탐욕과 얽힌 실타레처럼 꼬이고 뒤틀린 비밀은 마지막 결말을 숨죽이며 기다리게 합니다.
나 와 또 다른 나라는 설정은 이미 다른 SF영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이 영화가 유독 독특한 색깔을 띄는 이유는 탁원한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철학적이기까지 한 심오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똑같은 생김새 뿐 아니라 생각과 추억을 공유한 존재... 서로가 진짜라고 믿으며 싸우지만 어쩌면 내가 진짜가 아닐 수 있어 지금까지 내 모든 기억은 그저 상상이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충격을 담아내고 있지요. 더 나아가 젊은 해리슨 포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SF 고전 <블레이드 러너>에서 룻거 하우어의 열연으로 표현된 비록 복제인간이었지만 인간처럼 살고 싶었던 비 내리는 옥상의 마지막 명장면 못지않은 전율을 담아 냅니다.
기계 로봇은 <터미네이터>에서 볼 수 있듯 지금껏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지만 <더문>에서의 '거트'는 케빈스페이시의 따듯한 목소리와 액정에 표시되는 그림으로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인간과 교류하는 존재로 조금은 다르게 묘사됩니다. 초반부 회사의 임무에 철저히 따르는 모습에서 결정적인 순간 인간인 샘을 위해 도움을 주는 헌신적인 모습은 차라리 비인간적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춰져 차가운 기계안에 따듯한 가슴이 있는 착각을 만들어 내기에 이릅니다. 복제인간이지만 그 또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존재이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 더 인간적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뿐 더 이상 복제인간의 정당성과 윤리의 잣대는 존재 의미를 잃어갑니다..
간혹 보이는 환영의 의미가 좀 모호하게 처리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영화는 SF와 스릴러라는 다소 맞지않은 궁합에서 최고의 재미와 전율을 선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며 인간의 탐욕은 과연 어디까지가 인간다울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각종 국제 영화에서 작품상과 주연상 등을 수상한 이유를 어럽지않게 찾을 수 있는 <더문>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지만 아쉽게도 이미 다른 방법으로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신 이 때 이 작품과 제목이 너무도 닮은 모든 사람들이 빨리 개봉하기를 기대하고 있는<뉴문>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사회 때에도 <더문>을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뉴문>으로 착각하시며 기다리는 분들의 안타까운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쩜 개봉 후에도 이런 사고(?)들이 생겨 <더문>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주실 수 있는 지금이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져 해 보게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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