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무게에 비해 너무 얄팍하다 ...★★★
교도관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오재경(윤계상)은 재소자 위에 군림하는 배 교도관(조재현), 사형수 이성환(김재건)과 친구처럼 지내는 김 교위(박인환) 등과 지내며 교도관으로서의 일을 하나둘씩 배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10년 이상 중단된 사형을 집행하라는 법무부의 명령서가 도착하고 오 교도관은 사형 집행을 할 교도관 중 한 명으로 선발된다. 이와 동시에 애인인 은주(차수연)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오 교도관의 고민은 깊어가고.
<집행자>에서 다뤄지고 있는 얘기는 아마도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후보는 자신의 집권 기간 동안에 사형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지만, 이취임식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무려 23명의 사형수를 한 날 한 시에 사형대에 세운다.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로. 그 이후로 현재까지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으며, 국제적으로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인정받고 있다.(10년 이상 사형 집행 없음) 그러나 야당 시절부터 사형제 부활을 외쳐왔던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흉악 사건의 발발이라는 조건이 덧붙여진다면 본보기 차원(!)에서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우선, <집행자>는 그 동안 사형제 폐지 쪽에 무게를 두었던 다른 영화들, 이를테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같은 영화들이 주로 택했던 시선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즉 죽여 마땅할 흉악범의 개과천선, 용서하는 피해자 가족, 옆에서 지켜보는 종교인의 존재라는 등식 대신에 직접 사형을 집행해야 할 교도관의 입장으로의 이동인 것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경험이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사형제 논란에 직접 이를 집행해야 할 교도관들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는 묘한 안일함이 배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사형이란 그 대상자가 개과천선을 했든, 안 했든, 오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저 사람을 죽이는 일이며,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은 업무(?)인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사형제의 직접적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살인이든, 사형이든 “어쨌거나 사람을 죽이지 말자”라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개과천선한 흉악범과 함께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악마의 헌신, 정말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악인을 동시에 등장시킨 것이며, 오 교도관의 애인 은주(차수연)의 낙태 문제까지도 동시에 다룬 것이리라.
문제는 이런 여러 가지의 죽음, 살인에 대한 소재가 자칫 주제를 명확히 부각시키는 데 장애 요소가 된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은주의 존재는 흐릿하다. 오랫동안 사겨온 것으로 보이는 둘의 모습은 내내 겉돌며, 왕가위 감독 스타일로 연출된 거리 풍경은 이물질처럼 어색해 보인다. 거기에 배 교도관과 오 교도관의 음주 및 소개팅 장면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이와 연관되어 하나 더 집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감독이 영화를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모르고 헤맨다는 점이다. 아마도 감독은 사형 집행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당연하게도) 그렇다고 한다면 클라이맥스까지 감정을 추스르고 쌓아가는 흐름과 클라이맥스 후의 마무리가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평가해주긴 힘들 것 같다. 사형 집행 이전에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은주와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하나는 신입 교도관이 교도 행정에 대한 이상적 관점에서 출발해 재소자들과 접촉하면서 점점 편의적, 현실주의적으로 변한다는 것과 사형 집행에 대한 교도관들의 거부감. 첫 번째의 변화는 애인도 지적할만큼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그 변화를 추동하는 원인은 매우 전형적이고 편의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에 따르는 고민의 흔적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비교해서 보자면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의 변화)
오 교도관의 변화가 조금은 급격하고 생뚱맞게 느껴진 것처럼 사형 집행에 대한 교도관들의 거부도 감정의 축적보다는 나열에 가까워 보인다. 그저 다수 교도관들의 다양한 거부 행태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사형 집행, 결국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에 대한 고민의 축적이 충분히 쌓였다고 한다면 사형 집행 이후의 여러 에피소드는 불필요한 것이리라. 그런 차원에서 사형 집행 이후의 후일담(?)은 관객 스스로가 생각해볼 여지를 두는 열린 결말로 나아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사형 집행 이전의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주제의 강조를 위해 사형 집행 이후에 교도관들에게 나타난 이상 증세를 과도하게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해 <집행자>는 고민의 무게에 비해 너무 얄팍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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