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 하나. 공포영화는 무서워야 하고, 코미디영화는 웃겨야 하고, 최루성 멜로영화라면 슬퍼야 한다. 캐스팅이 잘됐건, 촬영이 빼어나건 어쨋건 간에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런 본연의 임무를 수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패닉 룸>은 그런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수가 없다. 스릴러 영화임에도 별다른 스릴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대전제라 할만한 '패닉룸은 절대 침투불가능한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점에서 기인된다. 영화속에서 맥(조디 포스 터),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모녀는 비록 3인조 도둑의 갖은 침입 시도로 불안에 떨지만 그래봐야 패닉룸의 철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아군과 적군중 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 는건 우리쪽이다. 도둑들은 필요로 하는 것이 패닉룸안에 있기 때문 에 반드시 들어와야만 한다. 하지만 모녀는 그들로부터 가장 안전한 장소에 이미 와있기때문에 나갈 이유가 없다.(도둑들이 몇날 며칠동 안 패닉룸앞에 텐트라도 쳐놓고서 '굶어 죽을래? 나올래?'를 외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드디어 등장한다. 당뇨가 있는 딸에게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맥이 주사기를 가지러 패닉룸 밖으로 나간 사이 상황이 뒤바뀌어 도둑들이 패닉룸을 점령하게 된다. 필요로 하는 것을 얻게 됐으니 게임은 결국 그들의 승리일까? 아니다. 이번엔 맥이 총을 손에 넣고서 문앞에서 지키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상황은 도둑 일당보다 맥에게 유리하다. 그들 은 돈을 손에 쥐고 반드시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반면 일당중 하나 인 번햄(포레스트 휘테커)이 사악한 인물은 아닌지라 사라에게 주사 까지 놓아줌으로서 맥이 패닉룸으로 당장 들어가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는 없다. 딸을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면? 위에 말한 번햄이 그럴 인물도 아니거니와 맥은 <랜섬>의 멜 깁슨 못지 않게 '내 아이 건드 리면 너도 죽어'라는 태세다.
이러한 이유로 전반부에 사라와 맥이 패닉룸 안에 있을 때나 후에 도둑들과 서로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나 더 절실한 쪽은 언제나 도둑들이며 맥은 항상 상대보다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영화보는 내내 긴장을 할 수가 없었다. '패닉룸 안에 있으면 안전한데..', '총을 갖고 있고 도둑들은 독 안에 갖혀 있는 데..'라고 생각해버리니 주인공에 대한 어떤 위험도 느껴지질 않았 던 것이다.
이건 '정의는 항상 승리해', '주인공은 죽지 않을 테니까 걱정없어' 라는 뻔한 공식이 적용해서 재미가 없었다는 것과는 틀린 얘기다.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의 문제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다 리우스 콘쥐와 콘라드 홀의 카메라는 현란하게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지만 결국 '패닉룸'을 기준으로한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 공간 만이 이 영화속에서는 존재하며 그로 인해 주인공에게 이 두 공간이외 의 또 다른 상황이 닥쳐 뒤통수를 맞을 염려는 없기 때문에 이야기 가 그 이상으로 얽히거나 뻗어나갈 수 없어서 제한된 채로 전개가 되고야 마는 것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스타일'이 여전히 빛을 발휘한 것은 물론 인정 한다. 여느 감독이 같은 각본으로 만들었다면 이만큼도 안나왔을 것 이다. 그는 한줄기 빗방울이나 희미한 플래쉬 빛 만으로 영화의 분 위기를 이끌어내는 그런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던가? 이 영화 에서도 역시 뉴욕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한 웅장한 오프닝 크래딧으로 단번 에 관객의 시선을 장악한다. 하지만 결국 그런 스타일만으로 긴장의 끈을 조일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