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릴수록 마음엔 눈물만 고이고...★★★★☆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 진희(김새론)는 언젠가 아빠(설경구)가 다시 데리러 온다는 믿음으로 쉽게 보육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고 자신이 버려진 현실을 깨닫게 된 진희는 숙희(박도연)와 단짝으로 지내며 현실에 적응해간다. 그러나 숙희가 해외로 입양가게 되면서 진희는 다시 홀로 남게 된다.
삶은 진정 여행과 같은 것일까? 진희와 아빠가 함께 하던 여행은 어느덧 진희 혼자의 여행으로 바뀌고, 진희의 외로운 여행길은 숙희와의 동행으로 이어지다 다시금 혼자 남게 된다. 어쩌면 삶은 여행, 그것도 혼자서 하는 여행일지 모른다. 가끔, 자주, 누군가가 같은 방향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갈림길에서 멀어지고, 다시금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자>는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우니 르콩트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나 9살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그래서인지 화면엔 감독이 느꼈을 그대로의 진정성과 진실성이 묻어나고, 거의 모든 장면마다 눈물 폭탄을 장착해 놓은 듯 보는 관객의 시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해 댄다.
그렇다고 영화가 슬픈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관객에게 울라고 강요하거나 떼밀지 않는다. 슬픔은 유예될수록 더욱 커지며, 자제할수록 더욱 확장된다. <여행자>는 어린아이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학대함으로서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담담하고 일상적이며, 무심한 듯 아이들을 바라본다. 같이 지내던 아이가 입양될 때마다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작별)와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른다. 아이들이 겪었을 수많은 이별들의 쌓임은 아이들의 무심한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고, 이는 마치 가슴을 짜내는 듯한 슬픔을 안겨준다. 혜은이의 노래 <당신은 모르실꺼야>가 이토록 슬픈 노래인지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거의 모든 리뷰에서 거론하고 있는 <여행자>의 카메라 앵글은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에 맞춘 것이다. 심지어 영화 초반부 아빠로 나온 설경구의 얼굴은 어깨에서 잘려 화면에 나오지도 않는다. 이러한 앵글은 아이들의 얼굴을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담아낸 <나무없는 산>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나무없는 산>이 아이들의 표정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내렸다면, <여행자>는 진희와 함께 보기 위해 카메라를 내리고 있다. 아이들을 보는 것과 아이들이 보는 것, 바라보는 방향의 차이랄까.
사실 <여행자>는 특별한 사건 없이 심심하게 진행된다. 아니,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도 무심히 넘어간다. 예신(고아성)의 아픔과 자살시도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에 묻어가며, 스스로 흙에 묻힌 진희의 가냘픈 몸부림은 부릅뜬 눈망울로 대체된다. 그럼에도 관객은 영화의 단 한 장면도 무심히 넘길 수 없다. 여기엔 앞에서도 말했지만, 감독 스스로가 느꼈을 진정성과 진실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며, 이는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더욱 빛을 발휘한다.
그렇다. <여행자>는 배우들의 연기 없이 넘어갈 수 없는 영화다. 특히 많은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들이 좋은 소재와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로 아쉬움을 남겼다면, <여행자>엔 아주 작은 역에도 흔쾌히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아마도 이 부분은 제작자로 나선 이창동 감독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설경구, 문성근 등의 배우는 두 말할 나위 없고, 언제 저렇게 컸나 싶은 고아성("결국 식모가는 거잖아요")과 진희의 단짝으로 나온 박도연, 그리고 보모역을 맡은 박명신의 연기도 너무 좋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김새론 때문이다. 그 아이의 연기를 도대체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빠가 돌아오길 마냥 기다리는 아이는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는 아버지를 미워하다가, 끝내 자신을 자책한다. 그리고는 포기한다. 이 모든 변화는 말이나 대화로 설명되지 않고 오로지 김새론의 얼굴과 몸짓에 담겨져 있다. 의사(문성근)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 “옷핀 때문이에요”라며 왜 자신이 버림 받았는지를 말하는 진희의 울먹거림에 객석은 금세 눈물바다를 이룬다. 끝내 진희는 새로운 여행을 위해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 내려 당당하게 걸어온다.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