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신개념 SF액션이 온다!"
디스트릭트9의 포스터에서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문구였다. "과연 신개념 SF영화라? 기존의 SF와 별반 다를바 있겠어?" 라는 나의 생각을 무참히(?)깨버린 디스트릭트9... 이 영화가 신개념SF영화이자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예측가능한 결말과 볼거리에만 치중했던 기존 SF영화와는 달리 디스트릭트9은 영화 줄거리내내 관객들로 하여끔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화려한 CG보다는 보다 현실감있는 영상으로 사실감을 극대화시킨는 점이다. 시각적효과보다는 사실감있는 영상과 영화 중간중간마다 관객들에게 시사점을 던지는 휴머니즘 SF영화라 할 수 있겠다.
<디스트릭트9 포스터>
디스트릭트9 은 외계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인간들의 만들어놓은 수용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에 거대 우주선이 불시착하게 되고 28년동안 디스트릭트9구역은 인간들의 통제를 받지만 외계인들에 의해 무법지대가 된지 오래이다. 디스트릭트9은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외계인이 불시착한 장소는 그동안 SF영화에서 거의 90%단골장소로 등장하는 미국이 아닌 요하네스버그이다. SF영화로써 굉장한 볼거리를 선사할수 있는 미국대신 요하네스버그를 주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이 시행했던 극단적인 인종격리정책이다. 1966년 남아공의 백인지배계층은 수도인 케이프타운의 ‘6구역(디스트릭트 6)’을 백인전용 주거지로 공표한 뒤 그곳에 살던 흑인 원주민들을 격리시킨다면서 일거에 쫓아냈던 것이다. 이제 자연스레 디스트릭트9과 이 영화의 배경인 요하네스버그의 의문점이 풀리게 된다. 그렇다. 여기에 등장하는 외계인 프론들은 흑인, 혹은 오늘날 제한구역에서 격리된 난민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결국 디스트릭트9은 미래가 아닌 지극히 현실의 문제를 프론이라는 외계인 그리고 디스트릭트9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쩃거나 외계인 관리국 MNU는 외계인들로 인해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디스트릭트 9’을 강제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비커스는 비인간적인 태도로 프론들에게 강제 철거서명을 받아낸다. 그러던 도중 외계물질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하고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게 된다. MNU는 비커스가 외계 신무기를 가동시킬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지목하고 그의 장인어른마저 그를 생채실험에 이용하고자 한다. 결국 그는 오갈데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디스트릭트9으로 숨어들어가 크리스토퍼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처음에 디스트릭트9에 등장하는 외계인들 즉 프론들은 E.T와 같은 선한 존재라기 보다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성가신 존재로 등장한다.(비록 화성침공이나 우주전쟁과 같은 극악한 존재는 아니지만) 왠지 프론들의 모습 또한 징그럽고 흉칙하게 묘사되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큰 착각이자 오류에 빠지게 된다. 영화가 진행될수로 인간은 더욱더 잔인하고 흉물스럽고 탐욕스러운 존재로 묘사되고 프론들이야 말로 인간적이고 따스하고 희생적이기까지하며 정감미가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이였던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기 전 인간이였을 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였지만 외계물질로 자신이 외계인이 되어가면서 오히려 프론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되고 무기실험때 살아있는 프론을 죽일수 없다며 끝까지 거부하고 심지어 끝부분에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크리스토퍼와 그의 아들을 그들의 집(행성)으로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러한 프론들을 마치 벌레가 같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오히려 E.T와 같이 순수하고 약해보이는 모습으로 묘사하는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감독은 외계인과 인간을 바라보는 전도된 시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외계인들을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철저히 타자화시키고 배격시킨다. 프론들이 징그럽고 흉물스럽다고 느끼는 것 또한 지극히 인간들의 기준을 통해서만 판단한 것이다. 외계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자신들을 쓰레기 취급하고 생체실험을 서슴치 않는 인간들이야 말로 흉물스럽고 추악한 존재인 것이다. 고귀하고 지적인 존재로 보이던 인간이야 말로 알고 보니 외계인의 끔찍한 외모보다 훨씬 더 끔찍한 내면을 지닌 악마적 존재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외계인의 외모로 변해갈수록 마음속으론 오히려 휴머니즘을 회복해가는 주인공 비커스의 모습을 통해 인류가 가진 모순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영화는 앞서 언급했었던 인종차별문제(좁은 의미로는 흑인차별문제)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개념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다른 피부, 다른 민족에서 확장되어 다른 외모, 심지어 다른 생각을 가진 자에게까지도 이해하기보다는 배타적이고 적개심을 갖고 나와 다른 것들을 자꾸 몰아내려고 한다. 영화에서 크리스토퍼의 아들이 주인공 비커스의 팔을 보고 만지작거리면서 좋아하고 장난을 치면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인간들도 자신의 외모와 혹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기 보다는 크리스토퍼의 아들처럼 자신의 신체와 비슷한 한 부분을 보고도 좋아하듯이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갖도록 노력해야 되자 않을까?
이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비커스는 MNU에서 외계물질을 되찾는데 성공하지만 MNU의 쿠퍼스대령의 방해로 결국 외계행성으로 가는데 실패하고 만다. 결국 비커스는 프론들의 신무기(로봇)를 사용하여 자신의 희생하여 크리스토퍼와 그의 아들이 그들의 행성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고 자신은 만신창이가 된채 쿠퍼스 대령에게 잡히고 만다. 하지만 극적으로 프론들이 쿠퍼스 대령을 처치하고 비커스는 극적으로 살아난채 프론으로 변이된채 살아간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완전히 프론이 된 비커스가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비록 징그러운 모습의 프론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디스트릭트9은 겉으로는 인간과 외계인과의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과 인간과의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적 문제 즉 인간 내면의 탐욕과 이기심 배타적 심리와 이로 인한 인종문제를 절묘하게 그려낸 영화다. 피부색이야 어떻든 혹은 생각(ex종교)이야 어떻든 다 같은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그렇고 인종갈등과 이로인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인 남아공을 비롯 미국과 타국가들의 백인과 흑인간의 첨여한 대립은 말 할것도 없고 히틀러의 나치 대학살을 비롯해 1991년 보스니아-헬제고비나 사태로 20만명,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사태로 20만명,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 충돌로 3만 5천명, 코소보 사태로 2천명...등등 인종문제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는 미완성 결말이라는 점이다. 결국 앞으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류모두가 공동체로써 혹은 협력자로써 공존할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인해 서로 대립한채 살생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디스트릭트9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할 지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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