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에게 뾰족하고 긴 귀가 없다면? 우린 토끼의 귀(예를 들어 토끼 머리띠)만 보고도 그것을 통칭해 토끼라고 말하지만, 귀가 없는 토끼를 보고 토끼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곰 혹은 개 또는 물개라고 말해질 수 있겠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것을 빼내었을 때, 그것은 자신의 본질적인 것을 지켜낼 수 있을 까. 과연 귀 없는 토끼가 토끼일 수 있을까?
루도(틸 슈바이거)는 여자와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책임이 필요한 관계는 피한다. 반대로 안나(노라 치르너)는 사랑에 진지하지만, 분명 섹시하지는 않다. 루도에게 완벽한 여자란, 에쁘고 섹시하며 또한 가벼운 여자다. 안나에게 완벽한 남자란, 사랑을 진지하게 할 줄 아는 남자다.
그러니 루도와 안나는 서로 서로에게 ‘귀 없는 토끼’일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는 이성이란, 불필요한 존재일 뿐. 절대 서로의 토끼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
늘 나 자신은 ‘나’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우리가 가장 많이 되풀이 하는 말은 아마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이 아닐까. 우리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난 분명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건 대단한 가치를 불러일으킨다. 늘 내가 보고 있는 것만 본다면, 나는 영원히 발전할 수 없다. 점점 나이가 들며 보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 이곳 저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파장을 주는 것인지 느낄 수 있게 한다.
우린 분명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만의 가치로 살아가지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린 지금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귀 없는 토끼’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관계에 대한 철학적 되새김이다. 루도와 안나는 극중 끊임없이 소통하며 끊임없이 부딪힌다. 마치 해리와 셀리가 만났을 때 처럼. 하지만 그들의 싸움이 몰고 오는 것은 낯섬에서 익숙함, 익숙함에서 친근함, 친근함에서 좀 더 다정함. 사랑으로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소를 짓게 된다. 그들의 모습은 분명 현실에서의 우리와 너무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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