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여행'이라는 단어로 참 아름답게 포장되었다는 느낌의 영화입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버린 것을 이별이라 하고 그런 아버지를 잊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을 여행이라 표현하다니... 상황만으로는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여행자>는 그런 행위 자체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는 상황을 맞게 된 아이에 감정 변화와 그 주변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아버지를 두고 새로운 가정을 만나기 위해 보육원이라는 곳에서의 생활을 이해해야 하는 9살 소녀의 혼돈과 잠재된 분노에 초반부를 지나 그 속에서 조금씩 적응하며 살아가는 중반부 그리고 더 이상 오지 않을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찾아 떠나려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후반부의 이야기 구조는 감독의 실제 경험을 담담한 시각으로 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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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기도 부족한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아이가 원하지 않은 동생을 낳은 뒤 '너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해 시키려는 모순된 말처럼, 너의 행복을 위해서 버렸다는 어른들의 말은 아이에겐 들리지 않습니다. <여행자>의 경우에도 새롭게 가정을 꾸린 아내의 어린 아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전처의 자식을 버릴 수 밖에 없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어떤 동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의 잔인한 패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또 해외 입양이라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역사의 단면도 조심스레 비추며 지난 역사속에 우리의 치부를 살짝 드러내기도 합니다. 6.25를 거치며 황폐하고 굶주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의 젊은 노동과 생명을 담보롤 일구어낸 중동지역의 건설 업적과 월남전 파병. 그와 함께 우리들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켜 '아이 수출국'이라는 세계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벌어들인 외화를 토대로 우리는 지금의 경제를 이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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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받고 해외에 아이를 입양시키는 분노와 가슴 아픈 우리의 슬픈 역사 보다는 보육원에 오면서부터 떠나는 과정을 아이의 시선으로 담담하고 억지스러운 최루성 이야기가 아닌 희망을 말하고 있기에 더욱 슬프고 감동적입니다. 설경구, <괴물>의 고아성이 보여주는 전문 연기자의 연기와 함께 다른 아이들의 자연스러움은 주연인 김새롬의 믿을 수 없는 연기와 어울어져 가슴 깊은 곳에서 직설적인 강한 목소리로 호소를 전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어두운 골목을 자전거의 불빛 하나에 의지해 달리는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탄 아이의 모습을 담은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힘든 상황에 힘이 되어 줄 커다란 존재인 아빠의 상징을 의미하는 이 장면은 그렇기에 더 무섭도록 소름끼칩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그렇게 의지하는 자식을 버린 아버지... 연민의 감정이 행복을 빌어주는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아름다운 영화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다운 삶과 적어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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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여행을 마치고 귀향하는 여행자들을 따듯한 가슴으로 맞이해서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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